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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한여름 밤의 단상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07 17:08

수정 2017.08.07 17:08

[윤중로] 한여름 밤의 단상

기후가 바뀐 건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건지... 요즘 한국의 날씨는 견디기 무척 힘들다. 섭씨 34~35도를 넘나드는 기온에 습하기까지 해 냉방기가 팽팽 돌아가지 않는 곳으로는 가기조차 싫다.

행여 건물 밖으로 나가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재빠르게 이동한다. 그럼에도 강렬한 태양으로 찡그려지는 눈과 습한 날씨 탓에 몸에 달라붙는 옷으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수년 전 4월께쯤 출장을 다녀오면서 중동의 사막국가인 두바이에서 잠시 머무른 적이 있다. 당시 기온이 38도를 넘나들어 햇빛 아래로는 나가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늘에서는 견딜 만했다.
빛은 따갑지만 습도는 지금의 서울보다 훨씬 낮았던 듯하다. 아마 중동 사막국가 사람들이 지금 한국을 방문한다면 실로 엄청난 날씨 탓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하지만 어릴 적, 여름에 대한 추억을 되새겨보면 한국의 날씨가 지금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덥기는 했지만 견디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더워도 시원한 물에 등목 한번 하고 부채질 몇 번 하면 하루를 지내는 데 문제없었다. 시원한 물에 얼음 동동 띄워 설탕과 함께 미숫가루 몇 숟가락 붓고 휘휘 저어서 한 모금 마시면 체온이 쑥 내려가면서 더위를 잊을 수도 있었다. 요즘처럼 열대야 때문에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선풍기는 있어도 냉방기는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냉방기가 잘 돌아가는 건물이 최고의 피서지일 정도다. 휴가 받아 돌아다녀 봐야 더 덥기만 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실제로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10년(2007~2016년) 동안 8월부터 10월의 평균기온이 20.6도로 평년기온 20.0도보다 0.6도 높았다. 또 지난 100년간 한반도 기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일평균기온이 20도 이상인 여름이 2011년부터 2016년 새 142일로 1960년대의 103일에 비해 39일이나 길었다. 에너지 잡아먹는 냉방기 없이는 여름을 견디기 어렵게 된 것이다.


새 정부 들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놓고 사회적 의견이 양분돼 있다. 원전은 위험할 수 있는 데다 세계적으로도 줄여가는 추세여서 추가 건설은 안된다는 의견과 장기적인 전력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건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을 경우 기후변화와 에너지 다소비형 생활구조 등으로 계속 늘어만 가는 에너지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한여름 밤, 푹푹 찌는 찜통더위를 부채 하나 들고 기진맥진한 채 견디는 내 모습이 떠오르는 건 기우일까.

yongmin@fnnews.com 김용민 금융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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