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트럼프의 미국] ‘세계의 경찰’ 손 놓겠다는 미국, 러시아 손잡고 중국 견제 나섰다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19 17:04

수정 2017.01.19 17:04

호전적 고립주의 외교.. 美동맹 집단 안보체제 해체
새 국제질서 구축 불가피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마침내 백악관 입성을 시작한다. 대선기간부터 줄기차게 미 국익을 강조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동맹들과의 집단 안보체제에서 더 이상 손해 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구촌 '경찰국가'를 거부한 미국은 이제 러시아를 끌어들여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힘의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추구할 계획이다.

■호전적 고립주의 걷는 미국

미국은 세워질 때부터 고립주의를 지향했다. 유럽 열강들의 다툼으로 전쟁에 휘말리는 상황을 우려했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796년 고별연설에서 후대 대통령들에게 어떤 국가와도 복잡한 동맹관계를 만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미국이 개입주의로 돌아선 것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해외의 거대한 적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간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실은 냉전이 끝나면서 빛이 바랬다. 미국의 국방비 지출은 1948년 이후 2배 이상 늘었지만 같은 기간 연간 경제성장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미국인들은 세계화에 따른 자유무역 확대로 더욱 가난해지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남의 나라 분쟁에 끼어드는 정부에 질렸다. 지난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나토 회원 28개국 가운데 방위비 분담목표(국내총생산 대비 2%)를 달성한 국가는 미국을 포함해 5개국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에 더 많은 방위비를 요구하는 동시에 한국 및 일본의 핵무장을 막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지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목표는 단순한 고립주의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기간 동안 이슬람 수니파 극단세력 이슬람국가(IS)를 제거해 그들이 점령한 유전을 빼앗겠다고 장담했다. 또한 중국에 영향력을 행사해 북한을 제어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5월 트럼프 정부의 이념이 좌파적 경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우파적 민족주의를 섞어놓은 '호전적인 고립주의'라고 묘사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팍스아메리카나를 "관대한 미국이 고마운 줄 모르는 세계에 가져다준 전적으로 이타적인 체제"로 보고 있으며 미국이 구축한 세계질서를 해체하려 한다고 풀이했다.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을 견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기존 질서가 사라지면 힘의 공백을 채우려는 다른 세력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미국이 집단 안보체제에서 한 발짝 물러나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빈틈을 틈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이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고전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꺼내들었다. 러시아를 이용해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부터 1973~1977년 미 외교전략을 총괄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밀접하게 접촉해 왔다. 그는 리처드 닉슨 정부와 제너럴 포드 정부를 거치면서 미.중 수교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1972년 당시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인 그는 중국 방문을 앞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에게 소련을 바로잡기 위해 중국이 필요하다며 먼 훗날에는 반대의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보도에서 트럼프 정부의 외교가 44년 전 정책을 뒤집어 놓은 모습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친러시아 인사로 유명한 렉스 틸러슨 전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를 초대 국무장관에 지명한 것은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디딤돌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동시에 지난해부터 중국이 요구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부정하고 대만 정부의 존재를 합법적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올해 94세의 키신저 전 장관은 지난달 미 CBS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칭찬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중요한 외교 이슈를 많이 제기했으며 그것이 적절히 다뤄진다면 대단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에 매우 중요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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