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금융권 성과주의 도입.. 금융경쟁력 강화 vs. 노동의 질 악화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4.17 17:58

수정 2016.04.17 22:40

"비용 절감해 신규채용 확대"  "정규직 잘라 비정규직 늘려"
금융계 입장, 은행수익 줄어도 연봉 올라.. 금융산업부터 살려내야
노동계 입장, 공정한 평가 시스템 부재.. 결국 소비자 피해 부를것
#. 지난 1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2층 국제회의실에 마련된 협상 테이블은 일주일 전과 같이 반쪽만 차 있었다. 올해 임금협상과 금융권 성과제 도입을 논의하기 위한 노조(전국금융산업노조)와 사측(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의 2차 협상 자리였으나 사측이 참석을 거부한 것. 지난 2월 하영구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장이 성과제 도입을 위해 대화를 제안했을 때 금융노조가 대화불가 입장을 밝힌 것과 정반대 모습이었다. 양측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판'위에서 협상을 하기 위해 양보를 하지 않은 탓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금융권 성과주의 도입.. 금융경쟁력 강화 vs. 노동의 질 악화

금융권 성과주의 도입을 놓고 정부.회사 측과 직원.노조 측이 강대강으로 대립하고 있다. 사측은 고임금에 경직된 호봉체계에 성과제를 도입하고, 저성과자 관리를 통해 신규채용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성과주의 도입은 쉬운 해고를 위한 명분일 뿐, 신규채용 확대와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맞서고 있다.


■금융산업 생존 vs. 노동자 생존

금융권 성과주의 도입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결국 금융사와 노동자의 '밥그릇'과 직결된다. 사측은 금융사 수익은 주는데, 임금 등 판매 관리비가 지속 증가하면 금융산업 자체의 생존이 어려워지는 만큼 성과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사업사용자 협의회 관계자는 "은행 수익은 10조에서 3조원으로 줄었는데 은행원 임금은 계속 올라왔다"며 "은행원 연봉의 경우 국내 다른 산업, 외국과 비교해도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011년 11조8000억원에서 2012년 8조7000억, 2013년에는 3조9000억원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주요 수익성 지표인 은행의 총자산 순이익률(ROA)은 0.69에서 0.37로 반토막이 났다.

반면 2014년 기준 금융공공기관의 평균임금(8525만원)은 대기업(5996만원)의 1.4배에 달한다. 또 금융권 1인당 임금은 국내총생산(GDP)의 평균 2.03배로 영국(1.83배), 프랑스(1.73배), 독일(1.70배)보다 높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앞서 저성과자에 대해 고임금을 지불하는 구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뒤 "은행 전체 실적에 따라 성과연봉이 연동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은행 성과주의 도입이 '쉬운 해고'의 발판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저성과자 해고 합법화를 위한 성과주의 도입은 결국 노동자의 밥그릇을 빼앗아 대기업(금융사)에 주기 위한 조치"라며 "금융사 자율로 정하는 노사문제에 정부가 강제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신규채용 확대 vs. 노동의 질만 하락

정부는 금융권 신입사원 초임 삭감, 성과주의 도입을 통한 비용절감으로 신규 청년 채용을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조 측은 성과주의 도입이 노동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되려 노동의 질만 악화시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과주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일부 공감하면서도 성과주의 도입 명분과 방식에 대해서는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업 전체의 밥그릇(성장)이 줄고 있어 구조조정이 필요하기는 하다"면서도 "신임사원 임금을 깎아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명분과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 측은 성과주의 도입의 전제조건이 되는 공정한 평가 시스템 마련이 불가능하고, 성과주의 도입이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최근 들어 도요타,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도 단기성과 위주의 성과주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의 공적 기능 역시 약화돼 불완전 판매 등 소비자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금융사의 비용 절감 효과가 신규채용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2009년 당시에도 금융권 신입직원 초임을 20% 삭감하고, 정규직도 임금을 반납했지만, 결국 늘어난 것은 비정규직 등 질 낮은 일자리 뿐이었다"며 "결국 정규직을 쉽게 잘라 비정규직을 늘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과주의 도입과 함께 전반적인 은행권의 근무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비정규직 직원은 "최근 과로로 인한 은행원들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찜찜하다"며 "정규직보다 못한 비정규직 처우 개선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 이후 성과주의 제동 걸릴까

지난 13일 국회의원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조성되며 향후 금융당국이 강하게 밀어붙여 온 성과주의 도입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성과주의 도입을 거듭 강조해오며 지난 3월에는 금용공공기관 예산편성 시 성과주의 도입 수준에 따라 경영 인센티브를 5단계로 차등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공기업을 시작으로 시중은행까지 성과주의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사용자 협의회와 금융노조의 협상이 불발되고, 국회내 여당의 입지가 줄면서 성과주의 도입에 장애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 정권의 레임덕 현상과 함께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에도 제동이 걸린 셈"이라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은 금융개혁에 반대할 공산이 높다"고 말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