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4·③) 국회 공무원 '3인 3색'

최경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23 16:53

수정 2014.09.24 15:50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 중에서도 국회직 공무원들에게 최근 관심이 쏠리고 있다. 행정부와 달리 국회나 감사원 등 외부 기관으로부터 감시를 받지 않는 특성 때문에 '웰빙 직장'이라 불린다. 그러나 국회 내에는 채용시험을 거친 '정식' 공무원 외에도 국회의원 보좌인력, 계약직 연구원, 인턴이 있고, 정치권에서 투입된 '낙하산' 인력도 존재한다. 인턴, 계약직, 고시출신이라는 '3인 3색' 국회 공무원들의 삶은 국회의 축소판이다. 먹이사슬의 최하층에 있는 의원실 인턴은 저임금에 고된 근로로 점철돼 있고, 계약직 연구원은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반면 국회직의 꽃인 입법고시 출신들은 요직을 두루 거치며 정년을 보장받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4·③) 국회 공무원 '3인 3색'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제치고 '웰빙 고시'가 인기다.

고시생들 사이에서 일명 '웰빙고시'라 불리는 입법고시(국회직 5급 사무관 시험)에 올해 모두 5589명이 원서를 냈다. 모집 정원은 고작 22명. 254대 1의 경쟁률로 고시 중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17명 뽑는데 4500명이 원서를 냈다. 이런 추세는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국회지원기관이 고시출신 관료들로 채워지면서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활동을 하기 힘들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리 사회에서 돈 없고 배경 없는 서민들이 '개천의 용'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흔히 '삼시(三試)'(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꼽는다. 입법고시는 출세 코스로 알려진 삼시에 들지 않는 '제4의 고시'인데 이렇게 높은 경쟁률로 수험생들에게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진석 전 국회 사무총장은 입법고시 과열현상에 대해 "주요 정책결정에 있어 입법부의 역할이 확대되고, 국회사무처 등 국회소속기관이 전문성을 갖춘 입법지원조직으로 공고히 자리잡음에 따라 국회에 대한 공직 지원자의 높아진 기대와 선호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만이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 우선 입법고시의 특수성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입법고시에 합격하면 국회사무처,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국회도서관 등 4대 기관의 실무부서와 각 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 근무하면서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한다. 서기관 승진에 걸리는 시간이 행정부처에 비해 3~4년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실질적인 장점 이외에도 입법고시의 경쟁률이 높은 것은 소위 감시받지 않는 기관으로서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는 무형의 장점이 꼽힌다. 이런 특성 때문에 '웰빙 고시'라는 별칭이 붙었다. 행정부는 국회로부터 신랄한 감사를 받고, 예산과 법안, 정책 전반에 대해 간섭을 받는다. 국회기관도 국정감사를 받지만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입법활동과 예산심의 활동을 돕는 국회 지원기관에 대해 혹독한 감사를 하지 않는다.

국회직은 감시받지 않을 뿐 아니라 지배받지도 않는다. 행정, 사법 기관은 이른바 '상명하복식'의 공직사회 기강에 지배받는다. 고시 출신의 내부 경쟁도 심하고 인사에서 누락될 경우 옷을 벗어야 한다는 압박도 엄존한다. 그러나 국회기관의 경우 최고 수장인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원로 국회의원이 2년 단임으로 맡고 있어 정치 인생의 원만한 마무리가 목표인 경우가 많다. 조직을 장악하고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 성과를 내야 하는 일반 행정부처의 치열한 분위기와 다르다.

입법고시 출신들은 조직 내에서 요직을 독점하며 우월적인 지위도 보장받는다. 국회 공무원 약 3500명 가운데 의원 보좌인력 2000여명을 제외한 약 1500명의 인력이 국회 기관들에서 일한다. 이 가운데 5급 이상이 약 550명, 이 중 입법고시 출신이 300명 정도다. 국회사무처에 240여명, 나머지 기관에 10~30명씩 배치돼 있다.

국회 지원기관의 상부를 고시출신이 장악하면서 관료화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초선의원실의 김모 보좌관은 "국회 기관들에서 제출하는 자료가 최근에 부실해지고 날카로움이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며 "국회 지원기관은 특정 정당이나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는 분석과 조사 자료를 내놓아야 3권 분립의 취지에 맞는 국회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4·③) 국회 공무원 '3인 3색'

■국회 내 대표적 입법지원기구인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는 연구인력 상당수가 임기제(계약직) 공무원이다. 고용 안정성이 낮고 우수 인재 확보에도 한계가 따르기 때문에 국회의 '싱크탱크'라는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국회에 따르면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의 순수 연구인력은 각 75명, 90명이다. 19대 국회의원 300명의 입법 역량 및 예산 심사권 강화를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입법조사처의 회답 내용 수준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며 "입법조사관 1인당 과제도 많지만 비전문가의 비율이 더 높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라고 밝혔다.

과거 입법조사처 내 전문가와 비전문가 비율이 6대 4였다면, 19대 국회 들어와서는 4대 6으로 역전됐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전문지식을 갖춘 박사급 연구원을 뽑아 놓아도 계약직이라는 신분이 불안한 탓에 '경력쌓기용 징검다리'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그만큼 조직 충성도나 업무 몰입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때문에 매년 국정감사에서는 입법조사관들의 처우개선을 비롯해 직업 안정성과 직무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떠돌 뿐이다.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월평균 550건의 입법조사 요구가 들어오는데 어떤 부처는 전담 조사관이 한 명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며 "인력 보강을 비롯해 연구관 제도 도입 등을 통해 신분이 안정되면 담당 업무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정책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재정 수반 법안 발의 시, 비용 추계나 재원 조달 계획 등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시토록 하는 내용의 '페이고(pay-go)'제도 도입이 논의되는 등 앞으로 예산정책처의 연구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추세다.

현재 맡고 있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 지원 업무를 비롯해 △예산안 및 결산 분석 △국가재정운용 및 거시경제동향 분석·평가 △국가 주요사업 분석·평가 등 역할 부담도 커지고 있다.

반면 미국 의회예산처(CBO)는 각종 예산과 법률, 정책 등이 국가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의원들이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예산정책처 측은 "미국 CBO의 경우, 인력충원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 없이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며 "저명한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구성해 CBO의 사전예측에 대한 신뢰성 및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국회 일각에서는 입법고시 출신의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입법조사처나 예산정책처의 팀장급으로 오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이 각 조직의 전문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국회 관계자는 "조사관이 박사급이라도 그 위에 실·국장이나 팀장이 사무처에서 내려온 비전문가일 경우, 업무에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내부 승진까지는 아니더라도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낙하산 형태로 내려오는 것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운영위 관계자도 "현재 입법조사처장이나 예산정책처장은 인사권이나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최소한 1, 2급 실장자리 정도는 각 수장이 인사 추천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4·③) 국회 공무원 '3인 3색'

■"의원실 인턴비서 한 명을 충원하기 위해 모집공고를 내면 통상 50~70명 정도가 지원한다. 과거에는 일반 대학생들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미국 아이비리그(Ivy League) 출신 등 상당한 수준의 스펙(SPEC.specification)을 갖춘 이들이 지원하고 있다" -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

최근 각 의원실별로 국회 유경험자나 박사급 전문인력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인턴 경력부터 쌓으려는 고학력자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높은 업무 강도 속에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월급 133만7760원(세전, 2014년 기준)을 받으며 연장근로는 물론, 휴일근무도 감수해야 한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한 초선의원이 '대학생들의 의정활동 체험'이라는 명분을 걸고 무급인턴을 모집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정기국회기간 국정감사 업무 등을 지원하는 입법보조원도 관련 법에 따라 무급 자원봉사자 형태로 채용이 이뤄진다.

이른바 '활동 종료 후 수료증 발급'이라는 미끼로 청년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학시절 모 의원실 인턴 경험을 살려 현재 정책비서로 근무 중인 A씨는 "4대 보험 등을 빼면 실수령액이 100만원을 조금 넘는다"며 "계약기간도 교묘하게 10개월 단위로 하는 경우가 많아 퇴직금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그나마 정책비서 자리를 얻은 본인은 '행운아'라는 게 A씨의 전언이다. 대다수 인턴들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봇짐장수' 노릇만 하다 꿈을 접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실제 30대 중반의 B씨는 의원실 3곳을 옮겨 다니며 4년 가까이 인턴 생활을 하고 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턴 등의 기간제 근로자는 2년 초과 근무 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야 하지만 B씨의 경우처럼 상당수 인턴들은 2년을 채우기도 전에 해당 고용주가 바뀌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가 입수한 '국회 인턴제 운영지침'을 보면 이들이 국회사무처에 인턴약정서와 함께 제출하는 '신원진술서'에는 신장과 체중을 비롯해 재산규모, 정당 및 사회단체 활동내용 등 필요 이상의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여성 인턴의 경우 종종 성추행이나 관련 루머에 휩싸여 괴로워하다 그만두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를 지낸 모 여성의원은 젊은 여성 인턴에게 스타킹 심부름은 물론, 화장실 이용 시 문밖에서 대기토록 하는 등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일삼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국회 인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국회사무처는 이들의 처우 개선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국회사무처 인사과 관계자는 기자의 각종 질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며 내부 지침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인턴 채용규모와 기간 등은 해당 의원실의 권한으로, 국회 사무처는 국회 인턴을 피보험자로 한 4대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하고 있다는 얘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관계자는 "우수 인력들이 의정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도입한 인턴제도가 비정규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법을 만드는 곳인 만큼 이들의 고용 불안 해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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