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특별기고] “이웃 돕는 착한 사마리아인, 학교·지방정부서 길러내자”

김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03 17:40

수정 2014.10.24 18:30

[특별기고] “이웃 돕는 착한 사마리아인, 학교·지방정부서 길러내자”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가던 한 사람이 한적한 길에서 강도 피해를 당했다. 때마침 그 옆으로 다가온 검정 고급 세단, 모범운전 스티커를 붙인 승용차가 외면한 채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20년은 족히 넘었을 듯한 낡은 트럭 한 대가 털털거리며 다가와 피해자 곁에 멈춰 섰다. 그리고 구릿빛 피부에 큰 눈망울, 약간은 어눌한 말투의 외국인 노동자가 트럭에서 내려 응급처치한 뒤 피해자를 트럭에 싣고 급히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며칠 동안 번 품삯 전부를 병원비로 대신 내고는 당분간 환자를 살펴줄 것을 병원 측에 당부하며 다시 돌아오겠다며 병원을 떠났다.

성서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재구성해 본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넘어 법리적으로도 유의미하게 해석되고 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는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해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않고, 또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도 감면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다. 종교 안에 머무르던 에피소드 하나가 사회를 지탱하는 보편타당한 정의로 확장된 사례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가 시시각각 발생한다. 경제적 위기로 생존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 신체적·정신적 장애에 사회성 결핍까지 '부적합'의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는 소외된 이웃들이 도처에서 힘겹게 삶을 영위하고 있다.

예산과 인력을 핑계 삼기 전에 작금의 행정환경에서 자치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복지 통반장 제도를 도입했다.

통반장에게 '복지'의 옷을 입혀 이웃의 어려움을 구청에 알려주는 21세기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양성하자는 뜻에서다. 원조(元朝)처럼 사재를 출연할 필요까지는 없다.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의 사정을 전해주기만 하면 된다. 동 주민센터의 기능도 복지 중심으로 바꾸고 기존 1명이던 여성 동장을 5명까지 늘렸다. 여성의 눈으로 더욱 섬세하고 꼼꼼하게 이웃을 살피라는 뜻이다.

자생적인 착한 사마리아인도 눈에 띈다. 행정을 하다보면 이따금씩 기부의 손길을 내미는 이가 있다. 알뜰살뜰 모은 쌈짓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라며 쾌척하는 독지가들, 고사리손으로 채운 저금통을 불쌍한 친구들을 위해 깨는 아이들, 또 가진 물질은 적지만 재능과 땀으로 봉사하는 사람도 있다.

송파구에서는 '나눔의 문화를 지역사회 전반에 확산시키자'는 바람으로 행복나눔센터를 구상하고 있다.
행정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일자리 연계나 복지서비스 외에도 기부와 나눔의 가치를 더한 공간이다.

착한 사마리아인들은 우리 사회를 더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어 주는 소금과 같은 존재다.
학교와 종교, 국가와 지방정부가 먼저 더 많은 착한 사마리아인을 양성하기 위한 사회적 책무를 통감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박춘희 서울 송파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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