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제4의 물결,창조경제 혁명] (2부) 창조경제,기존산업을 이렇게 바꾼다

김승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4.03 17:46

수정 2013.04.03 17:46

[제4의 물결,창조경제 혁명] (2부) 창조경제,기존산업을 이렇게 바꾼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혁신'과 '융합' 그리고 '시의성'이다. 혁신은 빛의 속도로 급변하는 오늘날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혁신이 너무 빨라도, 또 일시적인 혁신만으로는 중장기적인 성장을 담보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기업의 흥망성쇠를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을 반드시 보장하지 않듯이, 또 당장은 아니지만 꾸준한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에는 분명 미래가 있다는 것도 곳곳에서 사례로 보게 된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아이폰의 애플, 그리고 국내 대기업의 그늘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먹거리를 찾아 보란듯이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중견기업 '모뉴엘'과 '락앤락', 그리고 한때 MP3 플레이어 하나로 세상을 호령했다 쇠퇴기라는 쓴맛을 보고 다시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 '아이리버' 등이 대표적이다.



■'창조적 파괴'로 세계 패권 장악한 애플

20세기와 21세기를 합쳐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뒤흔든 혁신 기업으로는 애플을 빼놓을 수 없다.

애플은 기존 시장 질서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성장을 거듭했다. 1980년대 매킨토시를 개발해 컴퓨터를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지금은 보편화된 컴퓨터 사용자환경(UI)인 아이콘, 메뉴, 마우스 등이 매킨토시를 통해 탄생됐다.

그러나 애플도 고비는 있었다. 1985년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영입한 존 스컬리와의 경영권 다툼에서 밀려나면서 추락의 길을 걸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운영체제(OS) 출현으로 급속히 하락세를 걷던 애플은 1997년 경영 악화로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위기에 몰린 애플을 구원한 건 잡스였다.

경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전 경영진이 퇴진한 애플은 쫓아냈던 잡스를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잡스는 애플 복귀 직후 모니터와 본체를 일체화한 올인원PC의 원조인 '아이맥'을 개발해 단숨에 흑자 전환을 일궜다.

이후 잡스의 경영 아래 애플은 휴대용 음악재생기인 아이팟과 온라인 음악판매 서비스인 아이튠스를 선보이며 IT 콘텐츠 시장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PC 기반이던 애플의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7년 1월 사명을 '애플컴퓨터'에서 '애플'로 바꾸고 같은 해 6월 아이폰을 내놓으며 휴대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후 2009년 출시한 아이폰3S는 기존 휴대폰 시장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스마트폰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개인용 태블릿 시대를 연 아이패드까지 내놓으며 전 세계 IT 시장의 주도권을 PC에서 모바일로 바꾸는 역사를 썼다.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 한 임원은 "애플이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혁신성이 약화되는 모습이지만 IT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삶을 모바일 중심으로 바꾼 일등공신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며 "많은 IT기업이 애플의 혁신 경영을 따라가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내는 좁다' 해외서 금맥 캐는 락앤락·모뉴엘

지난해 9월 초, 타이완 타이베이시 101타워 근처의 한 중형 슈퍼마켓. 이곳은 대만 중산층 주부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슈퍼마켓 안쪽에 자리잡은 생활용품 코너로 발걸음을 옮기는 고객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무엇이 진열돼 있나 보니 다양한 크기의 플라스틱 용기와 물병 등이 진열장 몇 개 층을 버젓이 차지하며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디자인도 괜찮고 가격도 비싸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찰나, 어디선가 눈에 익은 듯한 상표라는 것을 인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름아닌 국산 브랜드 락앤락(LOCK&LOCK)이었다. 중국 말로는 '즐겁게 닫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실제로 몇 분간 지켜보는 동안 락앤락 제품을 찬찬히 뜯어보거나 실제로 구매하는 주부도 몇몇 눈에 들어왔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락앤락이 잎차를 즐겨마시는 중국인의 습성을 활용해 개발한 차통 겸용 물병은 현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대표적인 제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2011년 상반기 상하이에서만 350만개 가까이 판매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락앤락이 중국 시장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4년 상하이에 법인을 설립하면서다. 이후 베이징 영업법인, 선전 영업법인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고 현재 24개 도시에 분공사가 위치해 있다. 중국 현지 매출은 이미 국내 매출을 훌쩍 넘어서 지난해의 경우 총 5084억원 매출 중 절반이 넘는 2606억원을 중국에서 거뒀다. 전체 매출 중 한국에서는 1638억원을 기록했다.

현지 생산과 현지인의 구미에 맞는 기능, 디자인을 제품에 적용함으로써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위한 단계를 하나씩 밟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주방용품 판매업으로 시작해 락앤락을 일군 김준일 사장은 회사를 2020년까지 '글로벌 주방생활용품 1위 기업'으로 키워나갈 꿈을 꾸고 있다.

좁은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에서의 성공 신화를 써나가고 있는 것은 락앤락뿐만 아니다. 중견 가전기업 모뉴엘도 그중 하나. 홈시어터PC(HTPC), 177.8㎝(70인치) 초고화질(풀HD) TV, 로봇청소기, 미용보습기 등 다양한 가전제품군을 생산하고 있는 모뉴엘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정평이 나 있는 회사다. 지난해 총 8000억원가량의 전체 매출 중 해외에서 거둔 비중만 90%에 달한다. 이에 따라 수출의 경우 2008년 '3000만달러', 2009년 '7000만달러', 2010년 '1억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억달러'의 금자탑을 세우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모뉴엘은 2004년 설립돼 회사 역사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뉴엘 박홍석 대표는 "대기업과 직접적인 경쟁은 피하면서 아이디어형 제품으로 승부를 건 것이 주효했다"며 "올해 말에는 본사를 제주도로 옮겨 수출 전초기지로 삼아 성장에 더욱 속도를 붙일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실용적인 기능과 수준 높은 제품 디자인은 'CES 2013년 최고혁신상·혁신상' 수상, '로봇청소기 클링클링 레드닷 어워드' 수상 등 국내 기업으로는 세우기 쉽지 않은 업적을 만들기도 했다.

현재 모뉴엘 제품은 북미를 비롯해 아시아·태평양,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4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고 최근에는 제품 선택이 깐깐하기로 소문난 일본 소비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이리버, '환골탈태' 경영으로 부활 날갯짓

최근 창조경제의 근간인 혁신을 통해 실패의 수렁에서 재도약한 기업으로 'MP3 신화'를 일군 아이리버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이리버는 창사 이듬해인 2000년 말 세계 최초로 멀티 코텍 CD플레이어를 개발해 6개월 만에 미국 시장 1위에 오르며 전 세계 IT 시장에서 일약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이후 MP3 플레이어인 프리즘, 크래프트를 개발해 세계 시장 1위에 올랐다. 아이리버는 2000년 당시 MP3 플레이어 시장점유율이 국내는 60%, 세계 시장은 20%까지 차지하며 벤처 신화의 상징이 됐다.

MP3 붐을 일으키며 2003년 코스닥에 상장한 아이리버는 창사 5년 만인 2004년 매출 4540억원, 영업이익 650억원이라는 초고도 성장을 이루며 전성기를 누렸다. 한때 아이팟을 겨냥해 사과를 깨무는 광고까지 제작해 애플과의 일전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무리한 해외사업 확장과 스마트폰 등장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한 경영 침체기에 빠졌다. 급기야 2005년 적자로 전환하면서 아이리버의 신화는 막을 내렸다. 이후 강도 높은 긴축경영으로 잠시 흑자로 돌아섰지만 아이폰이 출시된 2009년 또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곤두박질쳤다. 2011년까지 3년간 누적적자만 660억원에 달했다. 박일환 아이리버 대표는 "스마트폰 시장이 대중화된 2009~2011년은 아이리버에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lection point)'이었다"며 "스마트폰 등장으로 시장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MP3로 먹고살던 회사가 새 비즈니스를 발굴하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위기였던 것"이라고 전했다.

끝없이 추락하던 아이리버는 2011년 박일환 대표 영입 이후 고사 직전인 MP3 위주의 사업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체질개선을 단행했다. 지난 2011년까지 40%의 매출 비중을 차지했던 MP3.4, 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 등 기존 제품군의 비중을 1년 만에 14%까지 줄였다.

대신 KT와 공동 개발한 유아용 교육 로봇 '키봇'과 전자책 등 네트워크 사업군을 주력으로 키웠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MP3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스탤앤컨(Astell & Kern)'을 개발해 휴대용 초고음질 음향기기에 새로운 도전장을 던졌다.
아스탤앤컨은 출시 3개월간 글로벌 시장에서 1만5000대 이상 팔리며 아이리버의 주축 사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bada@fnnews.com 김승호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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