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송경진의 글로벌 워치] 한국, WHO 개혁에 방향 제시하길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28 17:47

수정 2020.05.28 18:32

[송경진의 글로벌 워치] 한국, WHO 개혁에 방향 제시하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게 보낸 5월 19일자 서신에서 미국의 기여금(4000만달러) 중단 및 탈퇴 가능성을 제기하고 WHO 개혁을 요구했다. 11월 3일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 대안은 없이 WHO 개혁 문제를 미·중 패권다툼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 서신은 심지어 차기 WHO 사무총장 후보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어이없는 '김칫국 마시기' 설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코로나19 사태는 상당 기간 제기돼온 WHO 개혁의 필요성을 재확인시켰다. 절박감이 있는 위기 때 시작하고 위기 이후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WHO가 직면한 근본 문제는 재정적 어려움이다.
WHO의 의제와 우선순위 설정, 역량 및 독립성, 사업의 예측가능성과 지속가능성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1993년 세계보건회의의 회원국 의무분담금 비확대 결정으로 재정 불확실성은 더욱 심화돼 의무분담금 비중이 2019년 전체 예산의 22%에 불과하다. 나머지 78%는 공여국이나 공여기관이 제공한 부정기 자발적 기여금으로 채워졌다. 그 결과 각종 글로벌 보건이슈를 다루는 WHO의 2018~2019년 예산이 겨우 44억달러(약 5조4000억원)로 우리 보건복지부의 2020년 보건예산 약 13조원의 절반도 안 된다.

더욱이 높은 자발적 기여금 비중은 공여자에 대한 WHO의 의존성을 높이고 독립성을 저해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중국 WHO' '친중국 사무총장' 등 편파적 비난의 배경과 무관치 않다. 자발적 기여금은 대개 특정 목적과 활동에 쓰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한국의 작년 WHO 기여금 역시 꼬리표가 달린 자발적 기여금이 72%를 넘는다. 공여자와 WHO 우선순위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므로 이런 운영방식은 WHO의 운신 폭을 좁히고 의제를 지나치게 확대해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 있다. 매우 포괄적인 웰빙의 문제마저도 WHO의 의제가 돼버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의무분담금은 줄이면서 의제는 추가하고 더 많은 역할을 기대한 회원국들의 오판과 과욕이 WHO의 역량과 위상 약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WHO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무총장이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 회원국을 설득하는 리더십과 신뢰를 구축하지 못한 실책도 크다. WHO 사무국의 과도한 출장비(일인당 연 3900만원) 지출 등 방만한 운영에 대한 일부 회원국의 불만도 높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글로벌 보건체제가 필요하고, 정부 간 기구인 WHO가 그 중심에서 다양한 기관들의 중재자 및 의제설정자로서 역할하길 기대한다. 한국은 그간 세계보건회의 논의나 WHO 운영과 효율성 등 개혁 문제에 대해 호주, 일본 등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번 코로나19 대응 경험과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WHO 개혁과 글로벌 보건 의제설정에 기여할 수 있다.
첫째, WHO의 조직 안정과 역량 강화를 위해 의무분담금 비율 확대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의 자발적 기여금도 꼬리표를 줄이고 WHO 재량 비중을 늘려야 한다. 둘째, 국적을 떠나 가장 능력 있는 인사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차기 사무총장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셋째, 코로나19 피해 최소화에 크게 기여한 우리의 공공의료체계의 장점을 WHO의 약화된 공공성 강화에 적용할 수 있는 한국의 이니셔티브를 개발·제안하자. WHO 개혁에 지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송경진 FN 글로벌이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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