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 칼럼] 미셸 오바마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13 17:31

수정 2020.05.13 17:31

스스로 이룬 아메리칸 드림
탁월한 소통력, 지금도 인기
방향 잃은 한국진보 갈 길은
[최진숙 칼럼] 미셸 오바마
한때 미국 언론은 그를 '성난 흑인 여성'의 대표자로 그렸다. 하지만 이제는 재클린 케네디 이후 가장 우아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영부인에 그를 올려놓는다. 시카고 변두리 흑인동네에서 태어나 프린스턴대·하버드대·유명 로펌·백악관까지 차례로 정복하며 완벽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여인. 남편이 대통령에서 물러났어도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아니, 전보다 더 높다.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이 그가 부통령을 맡겠다면 쌍수 들고 대환영이라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이야기다.


2018년 출간된 자서전 '비커밍'은 지금까지 전 세계 1000만부 이상 팔렸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까지 올랐다. 다발성경화증을 앓으면서도 단 한번 결근한 적 없던 보일러 공장 직원 아버지, 강인했지만 소박한 품성의 어머니와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에서 유년을 보내던 시절, 이런 현재는 상상에도 없었다.

그의 성공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얼마나 철저했는지, 무엇이 삶의 원칙이 돼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 행동했다. "패배감이란 실제 결과가 나타나기 한참 전부터 느껴지는 감정이고, 자기 회의와 함께 증식하는 취약함이다. 그리고 두려움이 그 취약함을 부추긴다." 가난한 집안의 흑인 여성을 대하는 주류의 시선에 미셸이 주눅들지 않은 이유다. 스스로를 그렇게 단련시켰다. 목표는 명확했다. 파트너 변호사, 안정적인 월급, 평생 살 집, 단란한 가정. 이 계획에 단언컨대 정치는 없었다. 솔직히 끔찍했다.

미셸이 예측 불가능 혼돈의 삶을 받아들이게 된 순간은 느닷없이 왔다. 로펌 인턴 후배 버락 오바마를 따라 같이 간 시카고 파사우스사이드 로즐랜드 교회 지하실. 흑인교구 주민들과의 대화 자리에서였다. 본능처럼 숨어있던 연대감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비영리단체로 직장을 옮겼고, 지역 아이들의 결핍을 채우는 여러 일들을 해냈다. 남편의 극적인 대선 출마, 격동의 선거유세, 마침내 백악관 입성 같은 기적의 서사에 그의 흔적이 뚜렷하다.

미셸의 인기는 탁월한 소통력에서 찾아야 한다. 그의 언어와 메시지는 어렵지 않다. 소수자·약자·아동·여성 인권의 수호자로 그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볼 줄 아는 힘 때문이다. 거기에다 실행력까지 출중하다. 거의 본능이라는 평도 있다. 그가 백악관에서 텃밭을 가꾸며 만든 아동비만 퇴치방안 등 성공적인 정책들은 생활 속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미셸은 '비커밍'에서 자신을 '어쩌다 그만 평범하지 않은 여정을 밟게 된 평범한 여성'이라고 정리했다. "기꺼이 남들을 알고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것은 정말 고귀한 일"이라고 썼다.

넷플릭스에서 최근 방영을 시작한 미셸의 다큐멘터리를 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긴급 폭로를 들었다. "일본에 사과는 끝까지 받아내야 한다. 하지만 한·일 젊은이는 교류하며 잘 지내라. 증오는 갖지 말자"는 게 당부였다. 할머니를 지원해온 정의기억연대가 제대로 성금을 쓰지 않았다는 비판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주먹구구 회계처리, 납득 안 가는 호프집 기부금은 진보운동 진영 전체를 한꺼번에 이상한 집단으로 보이게 한다. 정의기억연대의 전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존경받는 한국 여성계 어른들이 씨를 뿌려 꾸려진 단체였다.
지금은 너무 멀리 온 느낌이다. 피해자를 보듬지 못하는 여성·진보단체는 존재 의미가 없다.
귀 기울이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맞을 것 같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