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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 27년전 신경영 맞먹는 파격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06 18:07

수정 2020.05.06 18:07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승계 종식 등을 담은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으면서 27년 전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비견되는 파격적인 경영선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요구한 경영승계 논란, 노조 문제, 시민사회와의 소통 등 3대 권고안에 대해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자리에서 사실상 향후 삼성 경영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경영승계 논란에 대한 사과를 넘어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 이 부회장의 발언은 삼성의 지배구조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올 만한 메시지다. 특히 이 같은 발언의 배경에는 과거 삼성전자의 비약적 성장을 일군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과 선단식 경영이 더 이상 미래비전을 담보해 줄 수 없다는 총수로서의 고민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치열한 경쟁과 급변하는 세계시장의 패러다임에서 삼성이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면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의 경영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총수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삼성 경영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한 것"이라며 "백년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적임자라면 혈연을 초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 경영사의 또 다른 한 획을 그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1993년 6월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밝힌 신경영 선언보다 파격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회장은 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출장에서 현지 유통매장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외면받는 삼성 TV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회장은 그해 6월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 회장은 "양과 질의 비중을 5대 5나 3대 7 정도로 가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예 0대 10으로 가자는 것"이라고 전면적 품질혁신을 강조했다.
특히 이 회장은 200여명의 경영진에게 "나는 20년이 넘도록 '불량은 암'이라고 말해왔다. 삼성은 자칫 잘못하면 암의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이 회장의 발언은 삼성 경영혁신의 대명사처럼 회자되고 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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