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방사광가속기와 국가균형발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6 17:05

수정 2020.04.06 17:05

[특별기고] 방사광가속기와 국가균형발전
뢴트겐 교수가 X선을 발견한 후 세계 각지 환자들이 X선 검사의 혜택을 받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걸리지 않았다. 뼈가 부러진 곳을 찾거나 몸에 박힌 총알을 찾는 데 X선 촬영처럼 정확한 검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뢴트겐 교수는 진공관을 이용해 X선을 만들었지만 지난 세기 과학은 더욱 발전해 방사광가속기를 이용, 훨씬 정밀하고 밝은 X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속기는 미국의 로렌츠 교수가 버클리에서 처음 원형가속기를 발명할 때부터 의료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발전해 왔다. 첨단과학이 발전하고 확산되는 데 가속기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우리나라에는 포항 방사광가속기, 경주 양성자가속기가 운영 중이고 기장 중입자가속기를 비롯해 대전 중이온가속기가 설치 중이다.
그동안 가속기 설치는 각 지역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포항공대를 설립하면서 방사광가속기가 설치됐고, 경주에 저준위핵폐기물저장소를 설치하면서 양성자가속기를 설치했다. 기장에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설립되면서 중입자치료기가 설치될 예정이고, 대전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설립하면서 중이온가속기를 설치하고 있다.

호남 지역에는 대형 가속기가 한 대도 없다. 연구개발(R&D) 투자액 비중 역시 전국의 3.1%로 수도권(69.8%)과 충청권(14.8%)에 비해 훨씬 낮다. 첨단연구시설과 공공연구기관이 수도권을 비롯한 충청권, 경상권을 중심으로 배치되면서 R&D 분야의 지역 불균형은 점점 심화돼 갔다. 전남 나주에 위치한 광주전남혁신도시에는 한국전력공사가 자리잡으면서 한전공대를 설립하기 위한 작업을 해 왔다. 한전공대는 지난 4월 3일 교육부 설립허가를 받았고 2022년 개교를 앞두고 있다. 호남 지역민들의 열망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 공약으로 추진하는 한전공대 설립에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의결된 한전공대 설립 기본계획안에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구축이 명시돼 있다. 포항공대가 방사광가속기 설립으로 세계적 명문 연구중심대학으로 발돋움했듯이 한전공대 역시 기본계획안에 명시된 대로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를 구축, 세계적 에너지전문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

다행히 과학기술정통부는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를 국내에 설립하기로 하고 부지선정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3월 27일 발표된 평가항목에 국가균형발전 항목이 반영돼 있으나, 내용상 이질적인 '미래 자원의 확장 가능성'의 하부지표로 최소한으로 반영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국가균형발전 항목은 미래자원의 확장보다 입지조건에 독립적인 항목으로 반영하는 것이 더 실제적이고 균형잡힌 평가를 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현 정부가 지향하는 '지역이 강한나라, 균형잡힌 대한민국'이 과학계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신규 방사광가속기 구축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국가균형발전이다. 지역의 미래 전략산업에 기초를 제공할 과학 연구시설의 분산이 강한 지역을 만들어 줄 수 있다.
광주의 AI와 광융합산업, 전북의 농생명과 탄소산업, 전남의 에너지 신산업과 바이오산업 등 호남권은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고 있다. 절름발이는 빨리 뛸 수가 없다.
방사광가속기가 열어줄 호남지역의 새로운 천년을 통해 균형 잡힌 우리나라가 두발로 힘차게 미래를 향해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범희승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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