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찰칵, 찰나의 순간으로 세상을 뒤집어 보다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6 16:40

수정 2020.04.06 16:40

시대의 모순을 담는 사진가
박영숙·배찬효·노기훈 개인전
코로나19로 인간은 움츠러들었지만 자연은 봄 기운을 활짝 드러내 보이고 있다. 목련과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창문 안에 웅크린 개인들에게 새로운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아이러니한 계절이다. 찬란한 봄과 싸늘한 전염병의 기운이 교차하는 계절, 서울 삼청동 화랑가에서는 사진으로 시대의 모순을 말하는 작가 3인의 전시가 열려 이목을 끈다.

'그림자의 눈물'展 버려진 땅에서 마녀의 흔적을 찾다
'그림자의 눈물'展 버려진 땅에서 마녀의 흔적을 찾다

■박영숙, 마녀의 흔적을 사진으로 드러내다

"여든살이 되었어도 제 안의 마녀성은 여전히 존재해요. 이번에는 '마녀의 흔적'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한국 현대 페미니즘 1세대 사진작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숙은 서울 삼청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 '그림자의 눈물'을 진행중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1981년부터 진행해온 '36인의 포트레이트'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한 '미친년 프로젝트'에서 보여줬던 여성성을 강하게 부각시킨 도발적인 인물 초상사진 시리즈를 넘어서 사람이 떠난 '풍경'을 보여준다. 그간의 작업이 여성의 신체가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구도로 만들어졌다면, 이번 전시에는 제주 곶자왈의 풍경 속 여성성을 드러내는 소품들이 흩어져 있는 풍경을 18점의 사진에 담았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자기 멋대로 자란 숲이 풍기는 두려움과 불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아온 금기의 장소에 골동품 사진과 분첩, 웨딩드레스 같은 물건들이 마녀의 흔적을 암시한다.

박영숙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성들은 '미친년' 소리를 들었고 중세시대에는 '마녀'라는 프레임에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며 "그간 풍경에는 관심없던 제가 수년 전 '가시덤불 숲'이라는 뜻의 곶자왈을 우연히 방문한 후, 중세시대 마녀로 불렸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도망쳐 와 안식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6월 6일까지.

'서양의 눈'展 종교와 미신, 그 절대적 믿음을 비틀다
'서양의 눈'展 종교와 미신, 그 절대적 믿음을 비틀다

■배찬효, 주류와 비주류의 전복을 말하다

울퉁불퉁 한쪽이 썩은 대추나무 판. 그 위에 고대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제국 전사의 모습을 담은 부조를 인화시켰다. 일견 세월 속에서 사라지는 찬란한 문명의 뒤안길을 보여주는 것인가 싶은데 불을 끄고 나면 그 위에 형광 잉크로 기독교 최후의 심판 그림이 드러난다. 파피루스 위에 이집트의 고대 벽화 '사자의 서'가 인화됐다. 하지만 절대권력자인 오시리스의 자리에는 거울이 놓여 있다.

종교와 미신의 차이는 무엇일까. 동양의 종교는 서양에서는 미신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종교는 다른 사람에게는 신화일 수 있다. 누가 주도권을 갖느냐에 따라 주류와 비주류는 엇갈린다. 서양사회 속에서 동양 남자로서 느낀 '소외'를 사진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통해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배찬효는 최근 삼청공원 인근에 문을 연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 개관전 '서양의 눈'을 진행중이다.

배찬효는 '자화상' '형벌', '마녀사냥' 시리즈를 통해 유럽의 중세 및 근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백인 여성으로 등장함으로써 서구문명이 행한 차별을 역으로 보여줬다. 이번 전시는 그간 그가 보여준 작품 세계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는 신작전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종교와 신화 그리고 미신의 관계에 집중했다. 그간 타자 혹은 소수자를 구분 짓고 배척하는 이유를 인간의 절대적 믿음에서 찾아온 배찬효는 이번에는 그 편견의 선을 종교에 갖다 댔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시대와 지리적 조건에 따라 변화하고 사라지는 진리, 그 속에서 누가 누구에게 비주류라고 말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전시는 5월 13일까지.

'달과 빛'展 빛마저도 인공적인 일본 도시의 밤을 탐구하다
'달과 빛'展 빛마저도 인공적인 일본 도시의 밤을 탐구하다

■노기훈, 현대 도시의 밤을 탐구하다

"빛이란 것은 무엇인가에 주목했다. 근대인이 품은 야간 조명, 사람이 정돈시킨 그 빛이 이 시대 어떻게 자연의 빛과 공존하는지에 집중했다."

30대 젊은 작가 노기훈은 금호미술관이 올해 선정한 '2020 금호 영아티스트' 전시에서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을 탐구한 작품 '달과 빛'을 선보였다. 그간 한국의 근현대사의 풍경, 인물들의 삶에 집중하며 '미장센' '1호선' 시리즈 등을 선보여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관찰자로서 풍경과 개인의 거리를 유지하며 현재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균열의 기원을 찾고자 했다. 노기훈은 지난 2017년과 2018년 2년 동안 계절마다 한달씩 일본에 거주하며 요코하마 사쿠라기초역에서 도쿄의 신바시역을 오갔다.
이 과정에서 야간의 풍경을 담아 이번 전시에서 공개했다.

노기훈은 "한국의 야경과 달리 일본의 야경은 좀 더 인공적인 모습이 남아있다"며 "빛마저도 무언가 미세하게 컨트롤 된 느낌이어서 오히려 자연의 빛과 대조시키기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공의 빛과 달이 함께 비추는 도시 곳곳의 풍경이 어두운 전시장에 라이트박스와 함께 드러나는데 관람객은 그 사이를 오가는 동안 마치 일본의 어느 한 거리에 서 있는 듯한 낯선 느낌을 받는다. 전시는 5월 5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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