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단독] 수사 중 업체에 심사없이 임원 취업한 퇴직 검사... 검찰 기강해이 '눈총'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4 14:00

수정 2020.04.04 14:00

공직자윤리위 '취업제한' 결론... 과태료 요청
검사 무단 재취업 수두룩, 경찰은 0명 '대비'
'전관예우' 및 공직 부패 우려... "몰라서 아냐"
[파이낸셜뉴스] 검찰수사 중인 코스닥 상장업체에 퇴직 검사가 임원으로 취업했다 물러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취업제한 대상이었으나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몰래 취업한 것이다. 윤리위는 뒤늦게 이 사실을 파악해 심사했으며, 문제 퇴직 검사에게 취업제한 통보와 함께 법원에 과태료 부과를 요청했다.

본지 취재 결과 이 사건 뿐 아니라 검사 다수가 윤리위 심사를 건너뛰고 퇴직 후 취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기간 윤리위 심사를 건너뛰고 취업한 경찰 고위 공직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검찰 조직의 기강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소속 검사들이 매년 법으로 규정된 윤리위 심사를 건너뛰고 취업하다 적발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적발된 검사만 최근 10년 간 최소 40여명에 이른다. 출처=fnDB
검찰 소속 검사들이 매년 법으로 규정된 윤리위 심사를 건너뛰고 취업하다 적발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적발된 검사만 최근 10년 간 최소 40여명에 이른다. 출처=fnDB

■검찰 수사 업체 취업했다 2개월 뒤 해임

4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지와이커머스에 지난해 1월 감사로 취업한 퇴직 검사 이모씨가 취업제한 처분을 받은 것으로 뒤늦게 파악됐다. 이 업체는 같은 달 본격적인 검찰수사를 받았는데, 윤리위는 이씨의 취업이 취업제한 대상에 해당한다며 법원에 과태료 부과를 요청했다.

2017년 퇴임한 이모씨는 당시 로펌에 몸담고 있던 상태로, 2019년 1월 17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지와이커머스 비상근 감사로 선임됐다. 서울중앙지검과 인천지검, 창원지검 등을 두루 거친 이씨가 이 업체에 취업하기 위해선 윤리위 심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당시 지와이커머스 실소유주 A씨는 2016년까지 업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던 이 업체를 단기사채로 인수해 회사자금 500억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검찰은 수사 끝에 지난해 6월 A씨 등 경영진 6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씨는 2011년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범죄를 저질러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문제는 검찰 수사가 개시된 시점에서 퇴임 검사인 이씨가 위법하게 임원으로 취임했다는 점에 있다. 공직자윤리법이 검사가 수사가 이뤄지는 기관에 심사 없이 취업하는 걸 제한하고 있음에도 이에 따르지 않은 것이다. 이씨는 윤리위에 관련 사실을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해 3월 29일 주주총회에서 주주들 요구로 문제 경영진이 물갈이될 때 함께 해임됐다. 취임 두 달여 만이었다.

이에 대해 지와이커머스 한 관계자는 “지금 직원들은 그때랑 완전히 달라서 아무도 (이씨가 선임된 배경이나 해임된) 사유를 알지 못할 것”이라며 “전 경영진들이 나갈 때 같이 해임된 것 같다”고 전했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직자윤리법 규제를 어기고 무단으로 재취업하는 검사들의 기강해이를 지적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출처=fnDB
2016년 국정감사에서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직자윤리법 규제를 어기고 무단으로 재취업하는 검사들의 기강해이를 지적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출처=fnDB

■경찰은 0명인데 검찰은 수두룩


공직자윤리법이 검사 등 공무원에 대해 퇴직 후 3년 동안 재취업을 막는 것은 소위 ‘전관예우’로 인한 공직 부패를 막기 위해서다. 특히 이 법은 퇴직 전 5년 간 소속됐던 부서 및 기관 업무와 연관이 없는 곳에만 취업할 수 있도록 해 수사기관 종사자가 자신이 수사나 감독했던 기업으로 옮겨가는 사례를 막는다는 목적을 확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완전히 다르다. 공직 퇴임 후 윤리위 심사 없이 취업해 과태료 부과 대상으로 지목된 검사만 지난 2016년부터 현재까지 19명에 이른다. 구체적으로는 법무부 소속 검사장급 검사 5명과 검찰청 소속 검사 14명이다. 2011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도 20명이 심사를 건너뛰고 취업했다가 적발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6년 국정감사에서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1년 SK그룹 ‘맷값 폭행 사건’을 맡았던 박모 전 검사가 폭행 피해자를 기소한 뒤 넉 달 후 SK로 이직하는 등 공직자윤리위의 판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윤리위 심사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검사와 같은 의무를 지는 치안감 이상 경찰 퇴직자 가운데선 윤리위 심사 없이 재취업한 경우가 없었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검사가 법을 몰라서 그렇게 취업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냐"며 "기대수익에 비해 과태료도 턱없이 낮고 법조인 사이에서 관행적으로 (심사를 건너뛰는 걸) 사소한 문제라고 보는 부분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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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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