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그 당연한 것들은 정말 당연했을까

용환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4 09:00

수정 2020.04.06 10:30

[만 18세, 투표소 가는길에]
【편집자주】만 18세의 생애 첫 투표, 그 시작을 파이낸셜뉴스가 응원합니다. 4.15 총선 페이지 오픈을 맞아 기획칼럼 '만 18세, 투표소 가는 길에'를 연재합니다. 진정한 민주시민의 권리인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만 18세들에게도 축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진=f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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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2004년 2월 16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만 18세가 되던 날이었고, 노량진에서도 삼류로 분류되던 재수학원에 등록한 날이었다.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어느 하루 제대로 공부한 적 없으면서, 전국 60만 넘는 수험생 저 뒤꽁무니에 세워진 게 그렇게도 불쾌했었다.

이날 나는 두 곳의 재수학원에서 등록을 거절당했다. 한 곳은 수능점수가 너무 낮아서, 다른 곳은 입원시험 성적이 낮다는 게 이유였다. 돈을 가져가도 받지 않는 학원이라니,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내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창피함에 화가 났으면서도 한편으론 당연하단 마음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평가는 일상이었으니까.

키가 작으면 한 자릿수였고 키가 크면 큰 자릿수로 불렸다. 공부를 잘하면 칭찬받았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아거나 부진아란 딱지가 붙었다. 둘 중엔 문제아가 좀 더 나았다. 문제라도 일으킬 능력이 있단 뜻이니까.

미술과 음악, 체육조차 점수가 매겨졌다. 평소 태도도 수행평가란 이름으로 수치화됐다.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는 이유로 매를 맞거나 의자 아래 꿇어앉는 일도 있었다. 그것 역시 당연했다. 우등생이 아니었으니.

만 열여덟의 내게 세상은 앞서거나 뒤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모든 평가 뒤엔 뛰어난 자와 그렇지 못한 이가 있었다. 유능한 학생은 좋은 점수를 받았고 유명한 대학에 갔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곳으로 가는 게 당연했다. 이기면 원하는 것을 얻고 지면 얻지 못하는 게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게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시절 내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어디에 표를 던졌을까. 당연한 것이 계속 당연하기를 바랐을까, 그 반대를 원했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당연한 것이 정말 당연해 마땅한지 생각해보긴 했을 것이다. 만 18세에게 주어진 첫 투표권은 그래서 귀하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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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15 총선부터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흥미로운 제도다. 지역구별로 최다득표자 한 명이 선출되고 그를 뽑지 않은 모든 표가 의미 없이 사라지던 옛 제도를 보완했다. 낙선한 후보자가 얻은 표까지 대표자 선출에 반영하는 것인데, 떨어진 표도 귀하다는 발상이 새삼 놀랍게 여겨졌다. 2004년 열여덟의 나는 스스로조차 귀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처음엔 승자독식 다수결이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다 물 건너 선진국에 더 나은 제도를 꿈꾼 이들이 나타났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제도를 들여오려는 이들이 생겼다. 그들은 어떻게 죽은 표조차 귀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을까. 왜 열여덟의 나는 공부 못하는 나를 귀히 여기지 않았던 걸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떤 제도는 쉬이 악용되고 어떤 사람은 빨리 타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한 번 진보한 시민은 결코 퇴보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열여덟 이후의 내가 그랬듯이.

국회 책상 앞에 앉아 옛날을 돌아보니 당연했던 많은 것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다. 불과 몇 년 전까진 만18세가 투표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몇 십 년 전에는 원하는 곳에 투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몇 십 년 더 전엔 투표가 뭔지조차 몰랐겠지.

그때라고 당연한 게 없었겠나. 어머니가 노비라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의 이야기가 공감을 사던 때가 있었다. 공자를 욕했다고 몰매를 맞고, 중국 역사를 책에 적었다가 가문 전체가 쑥대밭이 되기도 했다. 천주교를 믿는다고 고문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곳이나 있었을까. 천민출신 장수가 지휘하는 부대와는 함께 싸우지 않았다는 이름난 의병장도 있었다. 백정들이 투표권을 얻기까지의 투쟁기는 또 얼마나 눈물겨웠던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이 어떤 시대엔 당연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또 얼마나 어리석은 당연함에 쌓여 살아가고 있는 걸까.

역사는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과정의 연속이다.
나의 당연함도 만18세 친구들에겐 당연하지 않길 바란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더 많은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을 열어가길 기대한다.


축하하며, 건투를 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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