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친분과 실리 사이… 치밀한 계산 깔린 정상들의 '브로맨스' [글로벌 리포트]

홍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22 18:17

수정 2020.03.22 18:17

트럼프, 한국에도 철저한 '실리외교'
지소미아 등 韓日갈등 일자
각각 '친구' 부르며 등거리 유지
사적인 친구 사이의 브로맨스가 세계 정상급 지도자들 사이에도 통할까.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독 장기집권 중인 전 세계 '스트롱맨'들과 브로맨스를 과시한다. 그가 극도의 친밀함을 표시할 때 쓰는 최고의 찬사는 '친구'다.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친구들은 적지 않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심지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까지도 친구라고 칭한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도 공식석상에선 친한 친구라고 과시한다. 선거를 통해 자국의 명운을 책임하는 대표급 지도자가 경쟁국 지도자와 감성적 우정을 나누는 건 복잡다단한 외교관계를 풀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스트롱맨들 간 우정은 외양과 달리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자국 이익 우선주의'다. 지도자들에게 친구란 사실 '프레너미'(frienemy·친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친구인지 적인지 모호한 상대)에 가깝다.

■정상들 간 물고물리는 친구외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친다.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철저히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한다.

그럼에도 미국의 이해관계와 대척점에 선 시진핑, 푸틴, 김정은 등 적대국 지도자들과 유독히 절친 관계를 과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대표적인 라이벌 국가로 본다. 양국 간 무역전쟁뿐만 아니라 남중국해에서 실제 무력 대결 등 경제, 외교, 군사 모든 분야에서 세계 패권을 놓고 충돌을 빚고 있다.

하지만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친구로 가장 자주 언급하는 인물 중 하나다. 미·중 무역전쟁 중엔 공개적으로 '적'으로 규정하면서도 지난 1월 15일 1단계 무역합의안에 서명한 이후 다시 "나의 매우 좋은 친구 시 주석에게 감사하고 싶다"면서 친구와 적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중국과 무역협상에서 적으로 몰아붙이면서도 유리한 협상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친구라는 표현을 동원한다.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중국 역할론이 필요한 점도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을 친구로 간주하는 배경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관계도 적과 친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15일 푸틴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적도 친구도 아닌 경쟁자"라면서 "언젠가는 친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냉전 이후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러시아와 관계개선을 시도했으나 성공한 적이 없다. 특히 핵 문제는 양국 사이 긴장감을 더욱 바짝 조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트럼프의 절친 리스트에 올랐다. 트럼프는 지난해 2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위터에 김 위원장을 "내 친구 김정은"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북한이 비핵화한다면 베트남처럼 번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북한이 일주일 사이 세번째나 감행한 미사일 발사 후에도 오히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를 실망시키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회유했다. 대북 성과 부진론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친구맺기가 대세는 아니다.

시진핑, 푸틴, 김정은 간 절친 관계는 별개로 돌아가는 형국이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 사이엔 최고의 친구 사이라는 표현이 오간다. 시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은 친구를 넘어서 혈맹 수준을 과시한다. 전통적인 동북아 지정학적 패권 구도에서 반미를 표방하는 '북·중·러'간 끼리끼리 친구 맺기도 강하다는 뜻이다.

■브로맨스 이중성 종착점은 자국이익

외교 전문가들은 친구 외교의 겉과 속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절친을 앞세운 외교는 호감을 낳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단행할 수 있으나 실패 시 감당해야 할 비용 부담이 크다.

1인 절대권력이 강한 지도자 사이에 친구외교가 성행하는 이유는 장기집권을 배경으로 한 결단력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외교 현안에 대해 자국 내 민주적인 거버넌스 구조를 거치지 않고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 막대한 후유증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싱가프로 정상회담과 하노이 회담이 성사된 것은 모두 톱다운 방식 덕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최종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서 행사 자체가 지도자들의 원맨쇼에 그쳤다는 점이다. 실무진이 오랜 시간을 두고 협상한 내용을 최고 지도자들 간 정상회담에 올려 최종 승인하는 '보텀업' 방식에 비해 치러야 할 비용가 대가가 크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친구외교의 핵심은 철저한 자국 이익 중심의 실리외교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 한국에 보이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는 트럼프 대통령과 '베스트 프렌드'로 통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처음 만난 외국 정상이 아베 총리다. 두 사람은 '골프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17년 2월 북한이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 두 정상은 트럼프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머리를 맞대고 대북 대응책을 협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환율조작국이고, 미국과의 교역에서 지나치게 흑자를 내고 있다는 등 여러 불만을 늘어놓기도 한다. 일각에선 두 사람이 브로맨스 관계가 아닌 아베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초강대국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일본과 동북아 패권 구도에서 일본의 역할이 요구되는 미국 간 이해관계가 양국 정상 간 브로맨스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에 맞서 우리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취한 태도 역시 친구외교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각기 다른 자리에서 한·중 갈등 문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에 대해 모두 '친구'라는 표현을 쓰며 등거리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수차례 '친구'라고 말한 데 대해 중국 정치평론가 장리판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관계가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은 주로 중국 측을 제약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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