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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슈퍼버그의 습격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15 16:33

수정 2020.03.15 16:33

[윤중로] 슈퍼버그의 습격
바이러스의 세계는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경이롭다. 자신들이 거주할 공간을 찾아 지구 이곳저곳을 떠도는 방랑자이자 시간여행자다. 거주공간은 동물이나 식물, 인간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을 죽이는 항생제에 맞서 치명적 세균을 퍼뜨려 방어하거나 교묘한 위장술로 항생제를 무력화한다. 바이러스의 세계는 '무한 원숭이 정리'의 법칙이다. 원숭이가 컴퓨터 자판을 무작위로 무한히 쳐대다 보면 결국에는 조리 있는 문장, 나아가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까지 칠 수 있다는 논리다.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새로운 조합의 자판을 누르고, 이런 배열은 항생제를 비켜가거나 파괴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그렇다.

인간과 함께 날로 진화해가는 바이러스는 한때 모든 자연과 동맹 관계를 맺었다. 자신들이 거처할 공간이 현대 문명으로 붕괴될 순간에 처하자 인간의 몸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위험한 침입자로 변신했다. 바이러스는 신중하게 항생제를 이용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우리는 바이러스를 없애는 일에는 젬병이다. 현대 의학이 자연에서 박멸한 바이러스는 천연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전부다

끊임없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대항할 항생제 개발은 현재로서는 요원하다. 지금 사용하는 항생제는 대부분 1970년대 개발된 것들이다. 항생제 개발이 더딘 것은 물론 경제적 이유다.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임상시험 등 절차가 복잡하고. 효과가 입증되려면 수년이 걸려서다. 설사 항생제를 개발했더라도 이미 신약에 대한 내성을 갖춘 바이러스가 출현해 효과는 반감된다.

사실 항생제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단지 무엇을 항생제로 규정하느냐가 숙제다. 인간을 죽이지 않고 감염을 치료해주는 물질을 항생제라고 부른다. 다만 미생물 혹은 실험실에서 생성된 분자로 박테리아 감염의 예방과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것에 항생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항생제에 내성을 갖춘 세균, 즉 '슈퍼버그'가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슈퍼버그는 항생제를 분해하고 파괴할 수천가지 효소를 만들어내며 방어막을 친다. 항생제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슈퍼갑이다. 슈퍼버그는 단 한번의 돌연변이로 화학자의 레시피를 망가뜨리고, 정교하게 고안된 항생제를 파괴하는 고도의 설계자다. 최근에는 슈퍼버그의 적응력이 더 강해지고 악성이 되면서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동물에게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쓰는 관행이 슈퍼버그 출현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동물 안에 사는 바이러스가 최고의 항생제를 피할 방법을 학습할 수 있어서다.

바이러스 퇴치는 미생물로 가득한 흙에서 나온다. 미생물이 바이러스 감염을 억제하고 차단시키는 원천이라는 얘기다. 양질의 토양이 전제조건이다. 온갖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있는 현대 문명은 바이러스가 인간과 친화성을 맺게 해주는 숙주 그 자체다.

2017년 세계보건기구는 슈퍼버그 12종을 발표마면서 매년 70만명이 사망하고, 2050년에는 연간 1000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단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정체 모를 슈퍼버그 출현에 따른 대량감염에 대비한 시대에 접어들지도 모른다.
혁신적 방역체계와 사회시스템의 전면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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