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fn 제언]힘내라 대구! 힘내라 경북!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25 18:07

수정 2020.02.2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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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계속되는 25일 오후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보호구를 착용한 의료진이 근무를 마치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0.2.25/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계속되는 25일 오후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보호구를 착용한 의료진이 근무를 마치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0.2.25/뉴스1
코로나19 사태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영역으로 들어섰다. 국회가 문을 닫았고, 법원은 재판을 연기했다. 시민들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자영업자들은 "IMF 때 위기는 양반"이라고 탄식한다.

정치인들은 속을 긁는 재주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경제인들을 만나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1주일 뒤인 20일엔 영화 '기생충'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특식 짜파구리 점심을 대접했다. 같은 날 정부는 공식 보도자료에 '대구 코로나 대응'이란 제목을 붙이는 구제불능성 무신경을 드러냈다.

그새 코로나 바이러스는 슬그머니 대한민국 전역을 훑었다. 그중에서도 대구·경북을 아지트로 삼았다. 지난 18일 해외여행력이 없는 31번 환자가 대구에서 발생했다. 그 뒤 정부가 집계하는 환자·사망자 숫자는 덜컥 겁부터 날 지경이다. 25일엔 당·정·청이 입을 모아 "대구·경북지역에 대해 최대한의 봉쇄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해 또 다른 논란을 불렀다. "중국은 터놓고 왜 대구·경북만 막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온 게 당연하다.

문 대통령은 23일 감염병 위기경보를 최고수위인 '심각'으로 올렸다.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가 빠졌다. 대국민 사과다. 지난달 20일 우한에서 온 중국인이 1번 환자로 확진됐다. 이때부터 따지면 국내 코로나19 사태는 오늘(26일)로 37일째다. 야구에 빗대면 초반에 잘 던지던 선발투수가 갑자기 난타를 당하는 꼴이다. 교만이 화를 불렀다. 겸손한 자세로 다시 전략을 짜야 한다. 그 출발점은 대통령의 진솔한 대국민 사과다. 대구 방문(25일)만으론 부족하다. 그래야 그나마 믿음이 간다.

대구·경북은 남이 아니다. 우리와 피를 나눈 이웃이다. 이 지역을 조롱하거나 경원시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이미 소셜미디어에선 '#힘내라 대구 #힘내라 경북'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이마트는 귀한 마스크 수백만장을 절반값에 내놓았다. 어떤 건물주는 임대료를 낮췄고, 식재료가 남아 발을 동동 구르던 식당엔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자발적인 공동체 정신의 발로다. 지금이야말로 온 국민이 대구·경북과 진한 연대감을 보일 때다. 이웃집에 불이 나면 일단 불부터 끄는 게 상책이다. 그래야 우리 집으로 불이 옮겨붙지 않는다. 지금 불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1947년)에서 전염병이 창궐할 때 드러나는 온갖 인간 군상을 실감나게 그렸다. 알제리 해안도시 오랑에 봉쇄령이 내려진다. 그 안에는 세균에 맞서 싸우는 의사도 있고, 밀수로 돈을 버는 파렴치범도 있다.
결국 연대감으로 뭉친 자원봉사 보건대가 페스트를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카뮈는 소설 속 주인공인 의사 리외를 통해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고 결론짓는다.
지금 우리가 대구·경북에 보내는 연대감이야말로 찬양받아 마땅한 인간의 미덕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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