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홍남기 부총리, 파이팅을 보여달라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24 17:16

수정 2020.02.24 17:16

시들한 경제에 코로나 폭탄
버냉키와 윤증현이 롤모델
깜짝놀랄 발상의 전환 기대
[곽인찬 칼럼]홍남기 부총리, 파이팅을 보여달라
벤 버냉키는 1930년대 대공황 연구자 중에서도 알아주는 학자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무슨 일을 해선 안 되는지 알고 있었다. 당시 버냉키는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이끄는 의장이었다. 대공황 당시 연준은 금리를 올렸다. 자산 버블이 터진 시장에 재차 고금리 폭탄을 터뜨린 셈이다. 시장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버냉키는 정반대 정책을 썼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양적완화(QE)라는 비전통적 수단을 동원했다. 그렇게 시장에 최대한 유동성을 풀었다. 그 덕에 미국 경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 리먼브러더스 같은 큰 투자은행이 망했지만 여전히 미국 경제는 건재하다. 근래 선진국 가운데 가장 잘나가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미국이다. 경제학자 찰스 윌런(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는 "아직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이르다"면서도 "일단 지금은 벤 버냉키가 대공황 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는 점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돈의 정석')

모든 이가 버냉키 정책을 칭찬한 것은 아니다. 공화당 등 보수파는 '헬리콥터 벤'이 미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간다고 비난했다. 헬기에서 돈을 뿌리는 정책은 결국 인플레이션을 부르고, 종국에는 달러 가치를 저하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지어 버냉키를 매국노로 매도하는 이도 있었다. 구제금융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 삼았다. 누군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다 불을 냈다. 보수파는 그런 불량시민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죽든 살든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버냉키는 온갖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전례 없이 과감한 정책으로 미국 경제를 살렸다. 누군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다 불을 냈어도, 그 불이 이웃집으로 옮겨붙을 기미가 보이면 빨리 불부터 끄는 게 상책이라고 설득했다. 버냉키는, 비상한 시국에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세상에 보여줬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선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비상한 대응으로 금융위기를 돌파했다. 그는 2009년 2월 취임 일성으로 그해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2%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플러스 3% 전망치를 무려 5%포인트나 낮춘 수치다. 윤 전 장관은 "나 스스로도 마이너스 성장을 예견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이는 시장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이 백방으로 뛴 덕에 그해 한국 경제는 플러스 0.8% 성장했고, 이듬해(2010년) 성장률은 6.8%로 뛰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 곧 J노믹스가 비틀거리고 있다. 작년 성장률은 간신히 2%에 턱걸이했다. 이 판국에 코로나19 폭탄이 터졌다. 전염병 위기 경보는 최고 수위 '심각'으로 높아졌다. 경제는 더 심각하다. 생산, 소비 모두 꽁꽁 얼어붙었다. 올해 성장률은 2%를 밑돌 공산이 크다. 정부는 종합대책을 짜느라 부산하다. 비상한 시국이니만큼 버냉키, 윤증현 같은 발상의 전환을 기대한다. 당장 추경도 필요하지만 대증요법일 뿐이다. 이참에 경제체질도 같이 뜯어고쳐야 한다.

윤 전 장관은 11년 전 취임사에서 '길이 멀어서 허공도 짐이 되었다'는 조정의 시를 인용했다. "하루하루가 힘겹게 넘어가는 경제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때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겨울이 마냥 길 수만은 없다.
이번에야말로 경제팀장 홍남기 부총리가 파이팅을 보여줄 때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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