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윤상현, 이은재 등 계파·선수 상관없이 예상밖 '컷오프'
지지세 강한 TK, PK 이어 서울, 인천 등 수도권 중진도 정조준
친박·비박 계파 와해돼 당내 중심 세력 없는 현실 역설적 반증
보수 지지세가 강해 상대적으로 선거에서 안정권인 강남3구를 포함한 수도권 의원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공천에 탈락하면서 정치권에도 상당한 후폭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해당 의원들이 불복해 재심사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래통합당은 21일 서울 강남갑·을·병 선거구와서초갑·미추홀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결정했다.
서초갑은 최근 '컷오프 문자' 논란의 당사자인 이혜훈 의원의 현 지역구다. 매번 선거 때마다 50%가 넘는 득표율로 3선을 달성한 탄탄한 지역기반에 힘입어 21대 총선에도 출사표를 던진 이 의원의 4선 도전에 제동이 걸렸다.
공교롭게도 이 의원이 공천 면접을 본 당일 반나절도 안 돼 공관위는 이 의원을 단수추천 대상에서 배제했다. 서초갑을 우선추천지역으로 돌려 이 의원 대신 다른 예비후보를 전략공천하겠다는 것이다.
강남갑도 전략공천 지역으로 남겨졌다. 이 지역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3선 이종구 의원의 지역구다. 공관위는 더불어민주당이 20대 총선에서 당선자를 낸 강남을 선거구도 전략공천 지역으로 지정했다.
공천 칼바람은 선수에 관계없이 초·재선 의원들에게도 예외없이 몰아쳤다.
보수 정당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서울 강남병이 전략지역으로 분류되면서 이 지역구의 재선 이은재 의원이 강제 컷오프 당했다.
강남3구 중 한 곳인 서초을을 지역구로 둔 박성중 의원은 초선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예비후보와 경선을 치를 판이다.
두 사람의 당 내 활동이 미약한 것은 아니었다. 이은재 의원은 팩스로 접수된 법안서류를 가로채 기소될 만큼 지난해 패스스트랙 정국에서 적극 활동했고, 박성중 의원은 당 미디어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공관위가 개혁공천의 바로미터가 될 TK 지역의 공천 면접을 당초 19일, 20일로 잇따라 미루다가 아예 무기한 연기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불출마 결단을 압박하면서 여전히 버티고 있는 일부 TK 의원들과 팽팽한 기싸움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했다.
TK가 '공천 물갈이'의 주타깃이 되면서 수도권은 상대적으로 컷오프 칼날에서 '안전지대'로 여겨졌다. 수도권은 중도층의 표심이 강하게 작용하고, 상대적으로 험지가 많은 지역 특성도 반영됐다. 그럼에도 수도권에서 기반이 탄탄한 중진급 의원들을 공천위원들이 날려보낸 것은 공관위의 무소불위를 실감케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친이, 친박, 비박 등의 계파가 퇴조했지만 새로운 구심점이 들어서지 않은 당의 현 상황을 반증한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지금 미래통합당에는 친박, 비박계 간 경계가 허물어지다시피할 만큼 양 계파의 세력이 모두 급속도로 약화됐고, 황교안 당대표가 수장이 되면서 한때 '친황(親黃)'이란 신조어도 정치권에 나왔지만 지난 1년 내내 리더십 논란에 휘말리면서 친황 체제도 아직 미약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 내에 특정 계파가 득세하지 않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공관위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특히 황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천명하고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에게 공천에 관한 전권을 위임한 것도 '김형오 공관위'에 더 무게를 실어주는 측면이 있다.
미래통합당의 한 중진의원은 "요즘 공천이 진행되는 걸 보면 과거보다 확실히 잡음이 덜 나오는 것 같다"며 "당 안에 친박, 비박 이런 세력들이 사실상 와해되면서 공천권을 둘러싼 계파 대리전이 벌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수도권 중진들을 잇따라 컷오프 한 배경에는 다선 의원들의 '험지 차출'에 속도를 내기 의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부산에서 통합당 지역구 의원 12명 중 7명이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인적 교체가 탄력을 받고 있는 PK(부산·경남)와 달리, 수도권에서의 불출마 선언이 상대적으로 공관위의 기대치에 못 미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서울 지역에서 총선 불출마 선언은 2건으로 김성태(3선), 박인숙(재선) 의원뿐이다. 경기 지역에선 한선교(4선), 김영우(3선), 원유철(5선)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총선 불출마는 5명에 불과하다. 홍일표 의원(3선·미추홀갑)은 사실상 자진 컷오프 형식으로 불출마 대열에 오른 점을 감안해도 10명이 채 안 되는 것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수도권 험지 대신 경남 출마를 절대 고수하고 있어 김형오 공관위원장이 만일에 대비해 다른 중진들을 수도권 험지로 내보내기 위해 '작업'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홍 전 대표는 전날 공천 면접에서 경남 양산을 선거구에서 민주당 김두관 의원과 'PK 빅매치'를 제안했으나 공관위는 서울 강북 험지 출마를 요구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김 전 지사도 진보의 성지인 창원 성산구 출마를 권유받았으나 거절했다.
이번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모 의원은 특정 의원을 지목해 "이명박 정부 때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어 심지어 황교안 대표 체제에서도 A의원은 늘 친이, 친박, 친황계를 자처하고 다녔다"며 "항상 권력자만 쫓아 다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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