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서초포럼

[여의나루]평가가 있어야 발전한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20 17:27

수정 2020.02.20 19:21

[여의나루]평가가 있어야 발전한다
시험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험이 싫은 가장 큰 이유는 평가 때문이다. 시험은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운다. 성적에 따라 사람의 등급마저 결정되는 느낌이 든다. 성적순은 한정된 자리와 기회를 가장 불만 없이 나눌 수 있는 방법이다. 최소한 공정하지 않다는 비난은 피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을 치고 평가를 받는다.

시험은 선택과 평가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답을 선택할지는 응시자가 결정하고, 어떤 성적을 줄지는 평가자가 결정한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가장 난감한 것이 시험문제를 내고 채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채점 후 항상 "시험은 학생이, 채점은 교수가, 성적은 하늘이"라는 문자를 보낸다. 시험은 그만큼 치는 사람이나 평가하는 사람 모두에게 어려운 것이다.

정말 오랜 기간 시험과 평가의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왔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서 다시는 내 인생에 시험은 없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변호사가 되어서 피의자를 변론하게 되면 검사로부터 불기소와 기소라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극단의 평가를 받게 된다. 재판에서는 판사한테 승소와 패소라는 성적표를 받게 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의뢰인으로부터 받는 평가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 칭찬과 더불어 수입도 생긴다. 나쁜 결과를 얻으면 비난은 당연하고 소송까지 당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소송 결과가 나빠도 의뢰인으로 하여금 변호사가 저 정도까지 했으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변호사도 검사와 판사를 평가한다. 최근 검찰 인사에서 대한변협이 실시하는 검사평가에서 우수검사로 선정된 검사들이 중용됐다. 우수검사들을 본인의 희망 근무지로 배속한 것이다. 지금 대법원 산하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2009년 도입된 법관평가를 인사에 반영할 것인지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도입된 검사평가를 벌써 인사에 반영했다는 것은 획기적이다. 검찰의 인권과 변론권 보장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변호사가 수행하는 사건의 결과에 따라 판사나 검사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은 완전히 오해다. 변호사 일정 수 이상의 평가가 모여야 법관과 검사 중 우수와 하위가 선정된다. 선정 결과를 보면 사람을 보는 눈이 비슷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한 지역에서 우수법관으로 선정된 판사는 다른 곳에서도 우수법관으로 선정된다. 수사에서 하위로 평가된 검사는 공판에서도 하위다.

평가를 받게 되면 아무래도 당사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판사와 검사의 고압적인 태도가 바뀌고, 기소여부 결정이나 판결문 내용이 신중해진다. 결국 국민의 인권과 변호인의 변론권이 보장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 것이다. 평가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지만 신선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도전욕과 성취감을 부여할 수 있다.

평가가 있어야 발전한다. 그런데 살면서 어떤 것에 도전을 하고 평가를 받을지 고민스러울 수 있다. 부, 권력, 명예처럼 화려한 것만이 도전해야 하는 영역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스스로 행복해지는 일에 도전하면 된다. 그리고 스스로가 행복함을 느끼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이 아닌 이런 행복한 평가를 받는 주관적 1등들이 가득한 세상을 꿈꿔본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