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기본으로 돌아가기 vs. 스케일 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9 16:44 수정 : 2020.02.19 16:44
기업경영이 어려울 때면 흔히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고 한다. 신사업 발굴이니 신시장 개척이니 요란을 떨 것이 아니라, 핵심사업이나 핵심고객을 잘 지키면서 하던 일이나 잘하자고 한다. 반면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과 상품을 개척하고자 할 때는 '스케일업'을 강조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고 상업화돼 큰 성과를 창출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그 과정을 스케일업이라고 부른다.

해외건설의 경우 2010년대 초반에 해외 플랜트 부실로 한바탕 어닝쇼크를 겪은 탓인지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작년 해외건설 수주실적은 전년 대비 무려 31%나 감소한 223억달러였다. 경쟁력을 상실한 단순 도급공사보다 투자개발형 사업을 확대하고자 했지만 작년 투자개발형 사업의 수주실적은 18억달러로 총수주액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도급공사 중심의 해외건설사업에 주력해야 할까? 이미 도급공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한 상황에서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아직까지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우리도 선진 기업들처럼 사업개발 및 기획, 타당성 분석, 금융조달 등을 통한 투자개발형 사업의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1990년대의 동남아 건설 붐 때,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 해외 부동산 개발사업 붐이 불 때 투자개발형 사업 비중이 일시적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둔 사업은 드물다. 그러다 글로벌 경제나 건설시장이 위축되면 다시 '기본으로 돌아와' 도급공사에만 치중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이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국가가 됐다. 앞으로 해외건설은 선진국형 사업이 아니면 우리 기업도 진출하기 어렵다. 투자개발형 사업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케일업을 이뤄야 한다. 해외 플랜트 사업도 전통적인 '상세설계(E)-구매(P)-시공(C)' 중심을 넘어서 선진 기업들의 사업영역인 사업초기 단계의 엔지니어링과 개념설계 영역으로 가치사슬을 확장해야 한다. 시공 단계 이후의 운영 및 유지관리 영역으로도 확장해야 한다.

국내 건설시장에서는 전통적인 현장시공 방식을 대체해 흔히 '모듈러 건설'이라고 부르는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의 활용이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건설인력 부족과 고령화의 대안으로, 신속하게 서민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방안으로,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건설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이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대형병원을 불과 10일 만에 준공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이것도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작년에 공공임대주택 실증사업을 그친 뒤 올해부터 아주 조금씩 늘어날 듯한 모습이다. 기본적으로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은 규모의 경제가 작용한다. 따라서 일정 물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현장 시공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없다. 이제야 초기 단계에 막 진입한 우리나라의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케일업이 이뤄져야 한다.

해외건설의 투자개발형 사업이건, 국내건설의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이건 간에 새로운 사업발굴과 혁신을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자'가 아니라 스케일업을 추구해야 한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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