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규제받지 않는 은행들이 몰려온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8 17:13 수정 : 2020.02.18 17:13
"이제 스타벅스는 더 이상 단순한 커피회사가 아니라 '규제받지 않는 은행'이라 칭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기술의 발달이 업권의 경계를 현격하게 무너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신년사다. 강력한 규제 아래 있는 은행이 규제받지 않는 은행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식이 묻어난다.


세계 최대 거래소그룹 인터컨티넨탈익스체인지(ICE)가 2019년 실적을 발표하는 콘퍼런스콜을 통해 비트코인 선물거래소 '백트(Bakkt)'를 핵심사업이라고 소개하며, 백트가 올해 안에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모바일결제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할 계획임을 확인했다. ICE의 최고경영자(CEO)는 "백트의 모바일결제 앱은 수익, 매출보다 소비자 채택에 더 집중해 백트를 다양한 디지털자산의 종합사이트이자 마켓플레이스로 성장시킬 것"이라며 "이를 위해 대형 소비자 브랜드, 매장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트에는 스타벅스가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ICE가 스타벅스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지만, 전 세계 1500만 이상의 회원을 가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소비자 브랜드인 스타벅스가 백트 모바일결제 앱의 핵심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ICE는 백트의 모바일 앱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이겠다고 선언했다. 수익·매출도 중요하지 않단다. 일단 소비자가 많이 쓰도록 하겠단다. 그야말로 '규제받지 않는 은행'이 모바일결제 앱으로 시장을 선점하겠다며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돈을 주고받는 일이 페이스북에 사진 올리는 것만큼 쉬워질 것"이라고 공언한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는 자체 암호화폐 발행계획 때문에 각국의 견제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올해 안에 리브라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역시 또 다른 글로벌 '규제받지 않는 은행'이 출격대기 중인 셈이다.

20대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마지막 국회가 열렸다. 암호화폐 관련기업을 정의하고, 의무를 규정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도 안건에 포함됐다. 특금법 개정안에는 암호화폐거래소의 자금세탁 방지 의무, 사용자 신원확인 의무 같은 철통같은 규제안들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내심 불안하다. 깐깐한 규제법으로 스타벅스, 페이스북 같은 '규제 없는 은행'들에 맞설 한국 금융기업을 키울 수 있을까. 1등이 시장을 다 먹어치우는 네트워크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은 놓치고 괜한 한국 기업 발목만 잡는 것은 아닐까.

2월 국회에서 특금법이 개정되면 바로 정책을 구체화하는 시행령 개정이 진행된다.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라도 글로벌 지형을 살피고, 한국 기업들이 안방에서 역차별 받지 않는 규정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규제받지 않는 은행'들이 몰려오는데, 한국의 기업들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도록 만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블록체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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