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아내살해 치매남편, 첫 '치료적 사법' 재판..'집유' 선고

박지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0 14:00

수정 2020.02.10 14:00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병원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모씨에 대한 선고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스1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병원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모씨에 대한 선고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치매로 투병중인 60대 남성이 손자들 앞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치료적 사법'을 적용받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0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병원 병실에서는 진료가 아닌 재판이 열렸다. 선고가 법정이 아닌 병원에서 진행되는 것도 극히 이례적이다. 60대 이모씨는 2018년 12월 어린 손자들이 보는 가운데 아내 A씨(당시 65세)를 수차례 때리고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심신상실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수감보다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했다. 1심 판결에 양측 모두 항소했다. 특히 A씨의 유족이자 이씨의 아들은 "아버지 질병의 치료가 선행된 상태에서 죄에 대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 항소했다"고 밝혔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치매전문병원 입원을 조건으로 이씨에게 직권보석을 허가했다. 법원이 치매환자에게 '치료적 사법'을 목적으로 보석을 허가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었다.

이날 이씨는 오전 10시33분께 선고가 있을 병원 병동으로 환자복을 입고 마스크를 낀 채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다. 병동에는 법복을 입은 정준영 부장판사 등 판사 3명과 검사와 변호인, 법원 직원들과 방호원, 이씨의 아들 등이 함께했다. 이씨는 두 손을 모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재판부는 간략하게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이씨 아들과 병원장에게 치료 경과를 들었다.

아들은 "1분이나 3분 후 기억까지 잊어버리는 현상들이 있다"며 "안타까운 건 아버지가 치료적 사법으로 좋은 방향으로 (법원이) 이끌었지만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병원장은 "처음에 입원했을 때는 충동조절능력 약화와 공격장애가 나타났는데 치료를 하면서 증상이 많이 호전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과 변호인의 최후변론이 이어졌다. 검사는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서도 "개인적 감정보다는 국가의 기능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며 1심에서 구형한 징역 12년형을 유지했다.

이씨의 변호인 김선옥 국선변호사는 "5개월 치료하면서 공격성향이 많이 호전됐다"면서 "완치가 어려운 치매의 특성상 지속적인 관리감독과 치료가 필요하다. 유족이자 피고인들 자녀들이 피고인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고 피고인을 계속 보살필 것을 다짐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씨는 "여기가 어디에요?"라는 아들의 질문에 "법원"이라고 말한 뒤 "현실에 수긍하겠습니다"라고 짧게 최후진술을 마쳤다.

2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또 5년 동안 보호관찰을 받으면서 특별준수사항으로서 법무부 보호관찰관 감독 하에 치매 전문병원으로 주거가 제한 된 상태에서 계속 해 치료를 받을 것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것보다 치료명령과 보호관찰을 붙인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피고인 주거를 치매전문병원으로 제한한다" 며 "피고인이 계속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가진다고 선언한 헌법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 판결 선고로 항소심 재판절차는 끝났지만 피고인과 가족에게는 모든 사법절차가 끝난 게 아니라 치료 위한 사법 절차는 계속된다는 점을 명심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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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a@fnnews.com 박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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