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10개월간 치킨게임 LG-SK 배터리 戰…'조기패소 판결' 변곡점 코앞

뉴스1

입력 2020.01.26 07:00

수정 2020.01.26 07:00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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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전기차 배터리를 둘러싸고 소송전을 벌이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다툼이 지난해 4월부터 10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국내 기업이 이렇게까지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드문 일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극한으로 치닫은 양측의 갈등은 빠르면 이달 중에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조기 패소 판결 결과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26일 화학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LG화학이 지난해 4월29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SK이노베이션이 2년 동안 자사 전지사업 본부의 핵심 인력 76명을 빼가 전지 사업을 집중 육성했다는 게 LG화학의 주장이다.

SK도 가만있지 않았다. 지난해 6월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주장이 근거없다고 주장하며 국내 법원에 LG 측의 손해배상과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달라는 채무부존재 확인을 청구했다.
9월에는 반대로 'LG화학이 자사의 배터리 특허를 침해했다'고 ITC에 제소했다.

양측이 화해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난해 8월 말까지 양측은 화해를 위한 실무진 협상을 이어갔고, 9월16일에는 최고경영자(CEO)인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한 시간 남짓 만나 서로의 입장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무진 협상에서 LG화학 측은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서약, 일정 금액의 손해배상이 대화 시작의 전제 조건'이라 했고, SK 측은 이것이 '백기투항을 하라'는 굴욕과 다름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기다 CEO 회동 다음날인 9월17일 경찰이 SK이노베이션을 압수수색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지난해 5월 LG화학은 자사의 영업비밀을 유출했다며 SK이노베이션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는데, 이와 관련한 수사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압수수색 전날까지만 해도 양사는 "CEO들이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지만, 수색 이후 또다시 날선 말을 주고받으며 격화일로로 치닫았다. SK이노베이션은 공식 입장을 통해 "'묻지마식 소송'에 대응하느라 기회손실이 막심하다"고 날을 세웠고, 곧이어 LG화학은 "도를 넘은 인력 빼가기"라며 압수수색은 정당하다고 맞섰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국내외에서 쟁송을 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파기했다'는 소송을 제기하며 더욱 격화됐다.

사태는 지난해 11월 LG화학이 ITC에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SK이노베이션이 직원들에게 LG화학 관련 이메일을 지우게 하는 등 조직적·고의적으로 광범위하게 증거를 인멸했고, 포렌식 명령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에 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일부 증거 보존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고의성은 없었고, 증거 보존을 위해 노력했다"며 LG화학의 요청은 기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까지 상황을 볼 때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전이 LG화학에 다소 유리하게 기울고 있다고 보고 있다. ITC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이 지난해 11월과 12월 재판부에 'LG화학의 조기 패소 판결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가 결정되진 않겠지만, LG화학의 '증거인멸' 주장을 ITC의 산하 기관이 인정했다는 건 SK이노베이션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만약 ITC가 LG화학의 조기 패소 판결 요청을 수용하면 오는 6월로 예정된 예비판결까지 가지 않고 SK이노베이션은 패소 판결을 받게 된다. 이 경우 LG화학이 지난해 4월 소송을 제기하면서 요청한대로,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제품에 대해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할 수 있다. 업계는 ITC의 조기 패소 결정 여부가 이르면 이달 안에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해도 미국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일각에선 미국 내 일자리를 늘리고 싶은 트럼프 행정부가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주 공장 가동에 타격이 없는 판결을 원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윤리적 잣대가 엄격한 미국 사회에선 어려울 것이란 반론도 있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업계에선 이번 소송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모두에게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어느 한 쪽이 이긴다면 남은 한 쪽은 상대방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점이 인정되는 것이고, 이는 앞으로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판로가 제한되는 걸 의미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조만간 조기 패소 판단이 나온 이후 어느 쪽이든 상황이 급격하게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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