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의 회고 "검찰 독립 애썼던 노무현 대통령이.."

뉴스1 입력 :2020.01.16 05:00 수정 : 2020.01.16 15:32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0년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20.1.14/뉴스1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5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적 295인, 재석 167인, 찬성 165인, 반대 1인, 기권 1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0.1.13/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최은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 두 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로 후회해 왔던 검찰개혁 제도화가 마침내 실현됐다.

국회는 지난해 12월30일 고위 공직자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가결한데 이어 지난 13일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와 경찰에게 1차 수사의 자율권을 부여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담긴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청와대는 공수처에 이어 검경 수사권 조정안까지 국회를 통과하자 내부적으로 한껏 고무됐다. 청와대가 밝힌 "오랜 기다림 끝에 '비로소' 검찰개혁의 제도화가 완성됐다"는 입장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라며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자서전 '운명'에서 "민정수석 두 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일"로 공수처 설치 불발을 꼽았다.

공수처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통과로 검찰개혁 제도화는 문 대통령의 '숙원'이자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후회'를 이룬 순간이었다.

◇노무현과 문재인, 왜 '검찰개혁'을 외쳤나…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

'검찰 개혁'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이 핵심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이 특별검사와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로 밝혀지면서 지금은 '다소' 낯선 단어가 됐지만, 역대 정부에서 '정검(政檢)유착'은 대표적인 사회 부패로 꼽혀왔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의 검찰개혁 추진과 관련해 "그때 (노 전) 대통령과 우리는 검찰 개혁의 출발선을, 검찰의 정치적 중립으로 봤다"라며 "즉 '정치검찰'로부터 벗어나는 게 개혁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검찰과 정치권력의 유착은 건국 이후 역사와 함께 해왔다. 정치권력은 검찰을 정권의 도구로 사용하고, 정권 안보에 도움을 받아왔다. 검찰은 그 대가로 특권을 보장받았다"고 지적했다.

검찰개혁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던 노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검찰의 거센 반발로 청와대와 검찰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 출범 직후 당시 김각영 검찰총장보다 사법시험 11년 후배인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검찰 내부의 조직적인 반발로 시작된 청-검 갈등은 임기 후반까지 대통령 측근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엮여 지난한 줄다리기를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도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검찰 수사의 독립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했다고 평가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자금 수사로 대통령 측근들에게까지 수사의 칼날이 와도 검찰이 원칙과 소신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모두 허용했다. 우리 쪽의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겪으면서도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을 보장해줬다"라며 "그렇게 마련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앞으로 검찰 스스로 잘 지켜나가길 원했다"고 했다.

참여정부는 검찰개혁 1순위 작업으로 대검 중수부 폐지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대선자금 수사가 시작되면서 그 '정치중립'에 의해 이루지 못했다. 청와대를 향한 수사를 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중수부를 폐지한다는 지적을 받을 우려에 추진력이 떨어진 것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고 회고한다.

노 전 대통령이 중수부의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서거하면서 중수부의 표적·과잉 수사에 대한 비판으로 폐지에 힘이 실렸고, 이후 2012년 김광준 당시 서울고검 검사의 뇌물사건을 계기로 검찰 내부의 진통 끝에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4월, 32년 만에 중수부가 폐지됐다.

◇참여정부 검찰개혁 '실패'의 교훈…검경 수사권 조정·공수처 설치 '제도화'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실패'가 준 교훈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등 '제도화'가 우선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말기에 대통령 아들비리사건 등 측근 비리가 터지면서 권력형 비리에 대한 분노와 검찰이 제대로 역할을 못 했다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대안으로 나온 것이 공수처(당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다.

참여정부는 2004년 11월 대통령직속기구인 국가청렴위원회 산하에 공수처를 설치하는 정부 법안으로 발의했지만 끝내 무산됐다. 수사 대상에 '국회의원'이 포함되는 것이 화근이었다.

시간이 흘러 공수처에 대해서는 검찰의 '무소불위'(無所不爲)와 '검찰권 남용'을 위한 견제 장치로 떠올랐다. 판·검사의 비리에 대해 검찰이 '자기 수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 여론이 힘을 보탰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참여정부 초 검경수사권조정협의체, 자문위원회가 활동했지만 검경 갈등으로 논의가 이어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현행 검찰 수사제도가 국민의 입장에서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지적해왔다. 문 대통령은 2011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똑같은 조사를 경찰에 가서 받고 또 검찰에 가서 받는다"라며 "이럴 이유가 없다.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 인사 파동·靑 수사·검찰개혁까지…檢반발 경험치 '풍부'한 文대통령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반발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이미 경험치가 쌓여있다. 사실상 문 대통령보다 검찰의 청와대에 대한 반발을 더 잘 아는 이도 없다.

평소 모든 사안에 대해 '복기'하는 습관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장과 두 차례의 민정수석을 거쳐 두 차례의 대선을 치르면서 검찰개혁 추진 과정에 대해 자성을 하면서 동시에 강력한 추진 의지도 함께 커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참여정부 초기 '평검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단적으로 표출된 검찰 인사에 대한 내부 반발, 청와대를 향하는 검찰 수사 과정, 검찰 개혁을 추진하면서 나왔던 반발까지 현재 검찰개혁을 둘러싼 검찰의 반발은 문 대통령에게 '이미 겪었던 일'처럼 기시감을 주는 일일지 모른다.

검찰 일각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을 추진하면서 검찰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검찰의 힘이 비대해진 것은 일제 강점기 시대 '순사' 역할을 했던 경찰이 자초한 일이었고, 법원이 3심제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경찰 수사에 대해서도 검찰 단계를 더 거치는 것이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현재의 검찰 수사환경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문 대통령이 과거의 수사방식에 대한 검찰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의지'가 강한 나머지 방식이 다소 투박했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개혁 법안이 제1야당의 반발 속에서 통과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경우 경찰청법이 재정비되지 않아 현재는 검찰 권한만 축소된 상황이다. 공수처의 경우 '옥상옥'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개혁을 주도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기소됐다는 점, 이 과정에서 '국민 분열' 과정을 겪어야 했던 점, 자신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판해야 한다는 점도 아픈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시작으로 자신의 꿈이자 노 전 대통령의 꿈이었던 검찰개혁 제도화까지 이뤄냈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어떤 권력기관도 국민과 함께하는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법적, 제도적, 행정적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며 굳건함을 나타냈다.
네이버채널안내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광고 닫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