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평화, 돈으로 못산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15 16:49

수정 2020.01.15 16:49

과거 宋나라가 반면교사
김대중·노무현 때도'부도'
평화설계도 다시 그려야
[구본영 칼럼] 평화, 돈으로 못산다
신년 초 남북 이중주 속 불협화음이 예사롭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반도 정세와 향후 전망을 정반대로 변주하면서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 보고를 통해 곧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핵·미사일 도발 재개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7일 신년사에서 대북 경제지원 방안을 제시하며 김 위원장의 답방을 기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를 언급도 않았다. 그 대신 개성공단 가동·금강산관광 재개, 철도 연결 그리고 2032년 올림픽 공동개최 등 5대 대북협력 사업을 제안했다.
14일 신년회견에서도 같은 기조였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아 보인다. 미·북 간 '선(先)비핵화' 대 '제재해제 먼저'라는 평행선이 여전해서다.

야권에선 김정은 답방을 4월 총선용 이벤트로 의심하지만 이 또한 기우로 비친다. 태영호 전 북한 주영공사 말마따나 "이란 군부 실세 솔레이마니를 '핀셋 타격'으로 제거한 트럼프의 신의 한 수"를 본 김정은이 아닌가. 답방이란 모험보다 미국과 직거래, 즉 '통미봉남'(通美封南)을 고수할 거란 뜻이다. 지난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미·북 간 중재 의향을 비치자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찬물을 끼얹지 않았나.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생일(8일)에 대한 덕담을 하며 문 대통령이 이를 꼭 전달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계관은 11일 조선중앙통신 담화에서 "중뿔나게 끼여드는 건 주제넘은 일"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남조선 당국이 숨 가쁘게 흥분에 겨워 온몸을 떨며 대긴급통지문으로 알려온 미 대통령의 생일축하라는 것을 우리는 친서로 직접 전달받았다"고 조롱하면서다.

그럼에도 정부는 어떻게든 북핵제재망을 우회해 '대북지원을 통한 한반도 평화' 구도에 올인할 낌새다. 미국의 우려는 별개로 치자. 북한의 냉소를 무릅쓰면서 집착하니, 다수 국민들이 의아할 수밖에 없다.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제시한 북핵 해법에서 어렴풋이 그 속내가 읽힌다. "북한에 돈을 주고 돈벌이할 길을 열어주고 북핵을 사버리는 것"이라던.

그러나 이 같은 '북핵 구매론'은 위험해 보인다.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누차 시도했지만 부도난 해법이어서다. 공식 집계한 액수로만 총 68억달러 넘게 '선지원'했지만 되돌아온 건 북의 핵개발과 미사일기술 고도화였기 때문이다.

이는 큰 틀에서 보면 돈으로 평화를 사려는 발상이다. 물론 동서고금을 통해 그렇게 해서 성공한 전례는 없다. 산업혁명 전 영국보다 잘살았다는 송(宋)이 반면교사다. 송은 경제·문화적으론 시진핑 주석이 '중국몽'으로 재현하려는 중화제국인 한·당(漢唐) 못잖았다. 그러나 문약(文弱)이 문제였다. 요(거란)·금(여진)·원(몽골) 등 상무주의로 똘똘 뭉친 이민족에 차례로 돈을 바치며 연명하다 비참하게 무너졌으니 말이다.

연초부터 북한 정권이 핵 폐기와 경제제재 완화를 맞바꿀 의사가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간 비핵화 의지가 있는 양 벌였던 '위장평화 쇼'가 먹히지 않자 결국 커밍아웃한 꼴이다.
이런 마당에 우리가 먼저 제재 스크럼을 풀어 핵인질을 자원할 이유도 없다. 튼튼한 안보라는 토대가 없이 쌓아올린 '평화의 성'은 모래성일 뿐이다.
문재인정부가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국제정치의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평화 설계도를 다시 그려야 할 시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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