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호르무즈 파병' 두고 韓, 샌드위치 신세…고민 깊은 정부

뉴스1

입력 2020.01.06 06:01

수정 2020.01.06 06:01

27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이 출항하고 있다. (해군 작전사령부 제공) 2019.12.27/뉴스1
27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이 출항하고 있다. (해군 작전사령부 제공) 2019.12.27/뉴스1

(서울=뉴스1) 문대현 기자 = 미군의 공습으로 이란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망하며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극에 달한 가운데 '뜨거운 감자'인 호르무즈 해협 파병여부를 놓고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동맹국인 미국의 파병 요청을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6일 오전 아중동국장 주재로 외교부와 산업부, 국토부, 국방부, 해수부 등이 참석한 관계부처 실무 대책회의를 개최하는데 이 자리에서도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관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군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살 이후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맹비난하면서 미국과 이란 간 전면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도 3000명이 넘는 병력을 추가로 파병하기로 결정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제거를 직접 지시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미국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 지역에 자국의 역량을 모두 쏟아 부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5일 기자들과 만나 "(국내 수입 원유)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다.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다"라며 "선박들이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제사회 노력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엔 변함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르무즈 파병 등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선 "관계 부처에서 협의 중으로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결정된 바가 없다"고 부연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해협으로 중요한 원유 수송로 평가받는 곳이다. 그 중 가장 좁은 구간은 국제법상 이란의 영해에 속한다.

지난 5월 미국이 이란에 대해 경제제재 수위를 높이면서 유럽 국가들도 미국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자 이란의 불만은 점점 커졌고 급기야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하면서 미국은 동맹국을 중심으로 '호위 연합체'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한 상황

미국은 한국측에도 직간접적으로 연합체 참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할 가능성이 큰 쪽으로 예측된 바 있다.

앞서 중앙일보는 지난해 12월18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12일 NSC 회의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결정이 내려졌으며 이는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한국 유조선 보호 및 최근 들어 느슨해진 한미동맹 강화 목적으로 풀이된다"며 "국방부는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 바레인에 사령부를 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호르무즈 호위연합)에 연락장교 1명을 보내기로 확정하고 미국과의 실무협의에 들어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청와대와 정부측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물러섰으나 다음 달부터 강감찬함과 임무를 교대해 아덴만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이 호르무즈 해협으로 임무지를 옮겨 파병 임루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아덴만은 아라비아 반도 남쪽이고 호르무즈 해협은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이라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청해부대 작전구역을 호르무즈까지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최근까지 진행 중인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체결과 관련해 정부가 호르무즈 파병으로 '동맹에 대한 기여'를 증명하고 이를 분담금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을 수 있다는 상황도 있었다.

또한 일본이 지난해 말 아베 신조 총리가 주재하는 NSC 회의에서 해상자위대의 중동 파견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 우리 정부 역시 일본의 움직임 등을 점검하면서 궤를 함께할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러나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군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더욱 고조되자 우리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는 미국과 이란 중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로 비칠 수 있게 됐고 이에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정부의 부담감이 한층 커지게 됐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해군을 보낸다면 중동 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의 안전에 대한 우려도 생길 수 있는 만큼 정부는 모든 경우의 수를 가정해 다각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당장 직접적으로 한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은 크지 않지만 만에 하나 이란이 미국의 동맹국을 모조리 적으로 판단한다면 우리 국민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호르무즈 파병이 우리나라에 별 소득은 없고 손해만 클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정부로서는 민심을 살피는 일이 중요해졌다.

실제로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위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자 반미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셌고 진보세력들이 지지 철회를 선언하고 규탄집회를 열기도 했다.


현재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항행의 자유, 그리고 자유로운 교역이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파병을 포함해 어떤 방식으로든 호르무즈 해협 방위에 기여하기 위해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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