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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 바란다]정의당 해군제독 이병록 "요즘 빨갱이가 어딨나"

뉴스1

입력 2019.12.31 08:00

수정 2019.12.31 08:00

이병록 전 해군제독. 현재 정의당 국민안보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 News1 이종덕 기자
이병록 전 해군제독. 현재 정의당 국민안보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 News1 이종덕 기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특별위원회 위원장 임명식에서 이 전 제독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11.7/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특별위원회 위원장 임명식에서 이 전 제독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11.7/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 News1 이종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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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정상훈 기자 = "너한테 정말 실망이다. 왜 빨갱이가 되려고 하나."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 걸걸한 옛 동료의 비난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속이 무척 상했다. 그렇다고 말싸움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묵묵히 그의 비난을 들어준 뒤 수화기를 끊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 아직도 생각이 과거에 머물러 있구나.'

이병록 전 해군제독은 26일 국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지난달 4일 열린 정의당 입당식을 치른 뒤 한 동료와의 통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전 제독은 71년 헌정 사상에서 군 장성 출신으로 진보 정당에 입당한 첫 인물이다. 해군에서 무려 36년간 몸담았던 그가 '진보의 길'로 들어서자 일부 동료들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이 전 제독은 전했다.

그러나 그는 "요즘에 빨갱이가 어딨나"면서 반박했다.

"그 분들의 성장기가 유신과 5공 시절이지 않습니까. 1970년대만 해도 우리 군의 전력이 북한에 비해 열세였죠. 당시 군인들은 온몸으로 북한을 막고 있는데 진보세력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지 않았습니까. 진보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이 전 제독은 그러다 김대중 정부 등을 거치며 한반도 안보상황의 변화를 일선에서 체감했다고 회상했다. 군에 흐르던 일촉즉발의 긴장 태세가 완화되면서 장병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걸 직접 느꼈단다. '민주당을 찍으면 빨갱이'로 보던 시각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해군력에 있어서도 수십년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 전 제독은 잠수함이 북한과 수중전을 벌일 때에는 승패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수상전에 있어선 우리나라가 압도적 우세라는 분석을 내놨다.

변화한 시대에 맞춰 안보도 이제 전술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이 전 제독은 주장했다.

"일부 보수정당들이 흔히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강조하는데, 이건 우리나라 안보에 도움이 안됩니다. 주변의 많은 국가를 대상으로 나라를 지켜야하는 상황에서 한쪽으로만 군의 기량을 집중하면 경쟁력이 약화될 겁니다."

그는 나경원 한국당 전 원내대표가 미국 측에 총선 전 북미회담 자제를 요청한 것을 두고서도 "우리나라가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취약점을 스스로 노출시킨 것"이라며 "미국의 발언권을 높이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어 전략적 측면에서 도움이 안된다"고 평가했다.

이 전 제독은 군의 존재 이유는 어디까지나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사실 전쟁이 터지면 제일 먼저 죽는 게 군인 아닙니까. 지금도 하루에 수많은 장병들이 죽어나갑니다. 평화체제가 정착하면 장병들이 이렇게 안타까운 목숨을 잃는 일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정전협정이 평화체제로 전환돼서 전쟁의 위험이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평화체제가 무장해제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군의 '힘'으로 평화를 뒷받침해야 하는 거죠."

그는 보수세력의 주장대로 북한의 도발에 우리나라가 보복을 하게 된다면 더 많은 군 장병들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현실적' 분석을 내놨다. 이 전 제독이 보수정당 대신 정의당을 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 전 제독은 "한국당은 안보를 당리당략으로 이용하며 안보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며 "하지만 정의당은 안보에 대한 논리가 탄탄하며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고 했다.

정의당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종료를 제안한 데 대해선 "우리가 일본에 제공할 수 있는 북한 핵·미사일 관련 군사 정보는 일본에 결정적인 정보다.지리적으로 우리보다 먼 일본에서 수집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한일관계를 호혜적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일본의 진정성 있는 선조치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죽음도 정의당 입당의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보수성향의 한 예비역 후배와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다가 노 전 의원이 사망했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접했다.

"보수적인 제 후배마저도 '진보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때 보수는 감옥에 가서까지 똑같은 주장만 반복한다'고 하더군요. 정의당이 원칙과 사명을 지키는 정당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정의당으로 들어선 그를, 정의당은 입당식에서 "덕장"(德將)이라고 치켜세웠다. 상명하복의 보수적인 군조직에서 숨죽여 살아온 이 전 제독은 이제 정치적 소신을 마음껏 펼칠 기회를 얻었다. 앞으로는 군 현장에서 쌓아올린 정책·행정 역량을 정의당의 안보정책 강화에 쏟아붓고 싶단다.

다만 그는 내년 총선 출마와 관련해선 "군인이 상관의 명령에 죽는 것처럼 당원은 당의 명령을 따라야할 것"이라며 한껏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도 "총선에서 실패한 한 선배가 '병법을 모르고 전쟁에 나간 장군보다 선거판 모르고 선거에 나간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하더라"면서 "제가 정책 분석은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 정치를 하라면 군인은 서툴 수밖에 없습니다. 당에서도 제 능력을 잘 활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전 제독은 다른 당원들과의 '소통'에 힘쓰고 싶다는 점도 강조했다.
해군에 몸담았던 시절엔 비슷한 나이대의 선후배는 물론 20~30대 젊은 장병들과도 맥주를 마시며 격의 없이 어울렸다고 회상했다.

정의당호(號)를 탄 지금, 그는 "청년들에게 언제든 맥주 한잔 사줄 수 있죠, 물론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수십년간 바닷바람을 맞으며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웃음이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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