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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국민연금이 왜 자꾸 공정위·검찰 행세를 하나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27 17:18

수정 2019.12.27 17:18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더 깊숙이 간섭하는 길을 텄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27일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가이드라인은 경영자의 배임·횡령·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가 떨어지면 국민연금이 이사 해임, 정관 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게 했다. 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일부 사용자단체는 아예 회의를 보이콧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민연금이 기업을 압박하는 데 앞장서게 된 점에 참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금운용위의 밀어붙이기식 강행에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오너 때문에 기업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만약 국민연금이 해당 기업에 투자를 했다면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때 주주라면 누구나 경영을 바로잡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특수성이다. 흔히 국민연금을 연못 속 고래라 한다. 좁디 좁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대주주가 아닌 대기업을 찾기 힘들 정도다. 국민연금이 기업을 혼내기로 작정하면 어떤 기업도 당해내기가 쉽지 않다.

결정적으로 국민연금은 정치적 압박에 쉽게 휘둘리는 구조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사태 때 그 실태를 봤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섰지만 20인 기금운용위의 지배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기금운용위는 기업으로 치면 이사회와 같은 곳이다.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연직으로 맡고, 정부 인사가 5명이나 된다. 나머지는 사용자단체 대표, 가입자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돼 전문성도 떨어진다. 국민연금이 기업 지배구조를 문제 삼지만 객관적 지표로 보면 국민연금 지배구조야말로 시대에 뒤떨어졌다.


국민연금은 본연의 역할, 곧 국민 노후안정에 더 집중하기 바란다. 기업 지배구조를 바로잡고 말썽꾼 오너를 혼내는 것은 법무부와 검찰, 공정거래위원회에 맡기면 된다.
국민연금은 지금 감당하지도 못할 일에 손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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