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靑앞 밤낮없는 노숙농성…주민·시각장애학생 '지옥의 80일'

뉴스1

입력 2019.12.23 07:01

수정 2019.12.23 09:53

청와대 앞서 노숙농성중인 한기총 소속 보수회원들. 20191222 © 뉴스1 이준성 기자
청와대 앞서 노숙농성중인 한기총 소속 보수회원들. 20191222 © 뉴스1 이준성 기자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이준성 기자,이재상 기자 = 서울시와 종로구청 측이 청와대 앞에서 80일 넘게 노숙 농성중인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에 시설물을 철거하라고 계고장을 보낸 가운데, 범투본이 이에 응하지 않아 충돌이 예상된다. 범투본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가 총괄대표를 맡아 이끌고 있다.

인근 주민들과 맹학교 학부모들이 큰 불편을 호소하고 수차례 탄원서까지 보냈음에도 범투본 측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방해한다며 철거를 시도할 경우 대규모 반발을 경고하고 있다.

앞서 경찰의 야간집회 금지 통보까지 무시하며 밤과 낮도 없이 평일부터 주말까지 이어지는 불법 노숙집회에 인근 주민들의 삶은 물론 사회적 약자인 시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까지 침해받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이들은 "강제철거는 비인도주의적인 행위"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서울시와 종로구청에 따르면 20일 전후 북부도로사업소와 종로구청은 각각 차도와 보도에 있는 시설물을 범투본에 철거해달라는 계고장을 보냈다. 특히 서울시는 22일 자정까지 철거해달라는 계고장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범투본은 이에 불응했다. 범투본은 22일 밤까지도 현 정부를 규탄하는 등의 예배를 하며 노숙농성을 이어나갔다.

범투본은 지난 10월3일 개천절 때 '문재인 하야' 결단식을 한 직후인 10월4일부터 이날까지 81일째 청와대 앞 효자로에서 천막 등을 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전날(22일) 밤까지도 범투본은 효자동 삼거리부터 경복궁역까지 300m가량의 길이의 인도와 차도에 15개가 넘는 천막을 놓고는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너비가 5m 이상인 텐트 안에는 침낭과 담요 등 생활용품들이 가득했다.

이들의 80여일 넘는 노숙농성으로 인근 주민들은 큰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인근 지역 소재의 서울맹학교 학부모들은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들의 학습권과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보수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국본) 집회 참여자들은 학부모들을 향해 원색적인 욕설을 가하거나 "빨갱이"라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전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학부모 김복순씨는 "시각장애인 아이가 경복궁역 방향으로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눈도 아픈데 왜 돌아다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며 "이것이 우리가 참다 못해 나선 이유"라고 토로했다.

이 지역에서 이뤄지는 보행수업은 서울맹학교 학생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시각장애인은 생활환경을 크게 바꾸기가 어려워 졸업 이후에도 이 근처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있고, 따라서 근처 지형을 익힐 수 있는 청와대 주변 보행 연습도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졸업생 김모씨(30·여)는 "확성기를 이용하다 보니 소리가 사방에 울려서 내가 어디를 바라보는지를 몰라 걷지를 못한다"며 "어느 단체들이 오는지 파악도 안 되고, 생활이 마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학부모들은 주말 집회가 이어질 때마다 집회신고를 하고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는 방침이다.

서울맹학교 뿐만 아니라 효자동 주민들도 청와대 앞 집회와 관련해 불편함을 호소하며 수차례 탄원서도 제출했었다. 이들은 집회로 인한 소음과 교통 불편을 호소하며 범투본과 민주노총 산하 톨게이트 노조 등이 집회를 열지 못하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에 경찰은 지난달 25일 단체에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집회를 열지 말라고 통보했지만 범투본은 금지된 시간에도 집회를 계속 열고 있는 상황이다.

한기총 회원들과 범투본은 일요일인 22일 저녁 8시쯤에도 여전히 청와대 앞에서 현 정부를 비판하는 취지의 예배를 강행하며 일대가 시끄럽게 마이크를 통해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경찰이 옆에서 "소음으로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친다"고 경고 방송을 해도 단체 회원들은 소리를 지르며 야유하며 예배를 이어나갔다.

한기총 대변인 이은재 목사는 22일 밤 뉴스1과의 통화에서 "집회의 자유에 따라서 수백명이 그 천막에서 먹고 자는 것이며 이불과 담요, 식량이 다 들어가 있다"며 "이런 천막을 혹한기에 철거한다면 서울시와 종로구청 관계자들은 비인도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용역이 (23일) 오면 아마 심한 충돌이 일어날 것"이며 "오전부터 순국결사대가 (철거를 막기 위해) 대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와 종로구청 측도 22일까지 텐트 등 시설물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보냈고 이들이 불응한 이상 행정대집행에 나설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측은 "처음에는 원상복구 조치를 요구했지만 한기총이 응하지 않아서 계고장을 보낸 것"이라며 "22일까지 계고장에 응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밝혔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행정대집행과 관련해) 연락이 오면 구청도 철거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며 "이르면 23일부터 철거 작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범투본 측은 "청와대 앞의 노숙 농성 참가자들은 범투본과는 관련이 없다. 한기총 신도들이 하는 것이다"며 "범투본은 10월25일 이후 손을 뗐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범투본 측은 강제철거 상황 전까지 노숙농성 문제를 제기하는 각종 보도에 주최 측이 범투본이 아니라는 공식적인 해명이나 항의를 내놓은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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