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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의 News 속 인물] 트럼프에 도전하는 또 다른 재벌, 마이클 블룸버그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07 06:00

수정 2019.12.07 06:00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든 마이클 블룸버그 후보가 5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든 마이클 블룸버그 후보가 5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파이낸셜뉴스] 지난 2013년 가을, 뉴욕 시장이었던 마이클 블룸버그는 뉴욕 브롱크스에서 열린 골프장 개장 행사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와 인사를 나눴다. 그는 트럼프그룹이 쓰레기 매립지를 골프장으로 바꿨다며 "트럼프는 대단한 일들을 이뤘고 이 역시 그 일부다"라고 칭찬했다. 블룸버그는 그로부터 약 6년이 흐른 지난달 공식적으로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트럼프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5일(현지시간) 트럼프를 대통령 자리에서 쫒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블룸버그는 절친한 골프상대이자 같은 뉴욕 재벌 친구였던 트럼프를 상대로 어쩌다 맞붙게 됐을까?

마이클 루벤스 블룸버그는 일단 출신부터 트럼프와 다르다. 1942년 2월 14일에 태어나 올해 만으로 77세가 된 그는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교외에서 폴란드 유대인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헨리 블룸버그는 유제품 회사의 회계 관리자였고 어머니는 비서로 일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블룸버그는 유년시절을 보스턴 인근에서 보냈고 어릴 적에는 보이 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62년 존스홉킨스 대학 전기공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특이하게도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에 지원해 합격했다.

블룸버그는 대학원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다 친구의 권유로 금융계로 향해 뉴욕의 살로몬형제투자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증권 거래와 시스템 개발 업무를 담당했으며 입사 15년만에 파트너 자리까지 오른다. 그러나 솔로몬 은행은 1981년에 다른 기업에 팔렸다. 블룸버그는 1000만달러의 퇴직금을 받는 대가로 파트너 지위를 넘겨줬고 39세에 순식간에 실업자가 됐다.

그는 이후 그동안 쌓은 증권과 컴퓨터 시스템 경험을 활용해 사업을 시작했다. 블룸버그는 1982년에 자신의 퇴직금을 이용해 '이노베이티브 마켓 시스템'을 세우고 월가의 증권사들에게 금융정보를 제공하는 단말기 장사에 나섰다. 그는 1986년에 사명을 자신의 이름을 따 블룸버그 유한회사로 바꿨고 이후 블룸버그 통신과 TV 등을 세우며 미디어 쪽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지난 10월 미 포브스가 집계한 미국 부자 순위를 보면 블름버그의 재산은 534억달러(약 63조5193억원)로 전체 8위였다. 반면 아버지의 부동산 사업을 물려받았던 트럼프는 현재 재산이 31억달러로 미 부자순위 275위에 그쳤다. 트럼프는 위기의 순간에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내는 수완으로 유명했지만 실제 사업의 수익성으로 따지면 블룸버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미디어 재벌로 막대한 부를 쌓은 블룸버그는 자선활동을 하며 명망을 쌓았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나 링컨센터 이사로 활동하며 발을 넓혔다. 그때까지 민주당 지지자였던 그는 2001년 뉴욕 시장 선거에서 갑자기 당을 바꿔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이어 최근 트럼프의 '오른팔'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당시 명망 있는 뉴욕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의 강력한 지원 덕분에 승리했다. 블룸버그는 첫 임기 중에 금연구역을 확대하고 관광업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으며 2005년도에 재선됐다. 그는 2번째 임기에도 인프라 사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동시에 트랜스지방 음식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2007년에 돌연 공화당을 탈당했고 현지 언론에서는 그가 2008년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는 의혹이 돌았다. 그는 하지만 대선에 나가는 대신 뉴욕 시장선거에 3번째로 출마해 당선됐다. 시장 생활 동안 자신의 회사에서 퇴직했던 블룸버그는 2013년 3선 시장 임기를 끝낸 뒤 다시 블룸버그 경영에 복귀해 각종 자선 활동 및 환경 보호 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사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뉴욕의 명사였던 트럼프와 가깝게 지냈고 그의 가족들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블룸버그와 트럼프의 분위기는 트럼프가 2015년 본격적으로 대선 출마에 나서면서 경쟁 관계로 바뀌었다. 블룸버그는 거듭 자신이 대선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으나 환경운동에 집중했던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파리 기후협약 탈퇴 공약 등을 비판하며 트럼프와 거리를 뒀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다시 민주당에 가입했고 같은해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최소 8000만달러의 기부금을 내놓았다. 그는 2020년 대선에 나갈 생각이냐는 질문에 지난 3월까지만 하더라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했지만 지난달에 또 말을 바꾸었다. 블룸버그는 출마 선언에서 "트럼프를 물리치고 미국을 재건해야 한다"며 "내 모든 것을 걸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성향은 일단 중도에 가깝다. 블룸버그는 민주당 내 강성 좌파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는 의견이 다르다. 앞서 두 좌파 의원들은 민간 의료보험을 폐지하고 국가 단일 의료보험을 만들자고 주장했으나 블룸버그는 이 같은 정책이 현실성이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의료보험 체계가 혜택을 못 받는 계층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블룸버그는 아울러 워런 의원의 부유세 부과 주장을 "헌법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고 정부의 금융업계 제재에 대해서는 줄곧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블룸버그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2013년 시장 재직 시절 경찰의 불심검문 강화 정책을 옹호해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고 지난달 출마 선언 직전에야 당시 발언을 사과했다. 그는 외교 정책에서도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찬성하고 2015년 이란 핵합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등 우파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는 다만 총기 규제와 환경 보호면에서는 당내 어느 경쟁자 못지 않게 강경한 입장이다.

미 언론들은 어찌됐던 강성 좌파를 지지하던 유권자들이 블룸버그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는 결국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나 피트 부티지지 사우스벤드 시장 같은 중도 후보의 유권자를 가져와야 한다.
정치 분석가인 드류 웨스턴 에모리 대학 교수는 지난 2일 CNN에 낸 기고에서 보다 좌파적인 후보를 원하지만 트럼프보다는 블룸버그가 낫다며 블룸버그가 민주당의 '안전장치'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 경제전문방송 CNBC는 지난 9월 보도에서 민주당을 후원하던 월가 기업들이 워런 의원의 부유세나 급진적인 좌파 공약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또한 지난달 15일 연설에서 "평범한 미국인들은 기존 체제를 깨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며 민주당 후보들이 지나치게 좌파 공약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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