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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경제 어려운데 지방자치는 무슨"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4 17:06

수정 2019.10.24 17:06

[윤중로]

"경제도 어려운데 지방자치는 무슨."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렸던 지방재정분권 태스크포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불쑥 이렇게 말했다. 이날 회의는 앞으로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기존 8대 2에서 7대 3으로 개편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재정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교육부 등에서 모인 관료들과 각 부처에서 추천한 외부전문가 9명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참석자들의 재정분권에 대한 의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탄했다. 오히려 부처 간 재정 이해관계를 고리로 주고받기식 논의만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특히 경제위기를 내세워 재정분권에 부정적 의견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적지 않은 것은 여전히 지방자치가 국정의 중심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지방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와 법을 만들어도 중앙집중화 현상을 막을 수 없다. 최근 신도시 건설에서 보듯 전국의 모든 자원을 블랙홀처럼 흡수하는 현상이 완화하기는커녕 더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대통령은 지방자치를 강조하는데 내각은 마지못해 따라가는 상황은 볼썽사납다. 정책목표와 구체적 제도가 따로 논다. 이를 강력히 수행해야 할 정책 담당자들의 관점은 여전히 중앙 편향적이다. 이날 회의도 이런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국가재정을 줄이는 대신 지방사업과 매칭으로 운용되고 있는 국고보조금을 없애겠다는 구상도 제시됐다. 지방재정은 늘어나지만 국가부담은 줄어 그만큼 지방이 부족분을 채워야 한다. 개긴도긴이다.

경제관료들과 경제전문가들이 철옹성 같은 국가재정 논리를 앞세우는 한 문재인정부가 핵심으로 꼽는 자치분권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으로 누더기가 될 공산이 크다. 더욱이 현 정국은 자치분권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사태는 더 심각하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경제정책 남발로 재정분권에 대한 치밀한 논의와 부처 간 협의는 다분히 형식적으로 기울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중앙의 이해관계가 지방을 황폐화시킨 지는 오래다. 중앙정부가 생산하는 법령도 지방의 현장을 모르거나 무시한 내용 위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국회법률을 빼고 한 해 1700여건에 이르는 국가법령이 생산되고 있지만 이 법령들이 지방정부의 이해관계를 침해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한 전문가는 "국가가 법령을 만들면 사무처리 비용이 발생하지만 지방이 부담을 떠 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꼬집었다.

다행히 지난 7월 도입된 '자치분권 사전협의제' 덕분에 일부 지방정부 침해요소를 방지하는 성과를 낸 것은 그나마 주목할 만하다. 사전협의제가 처음 시행된 후 지난 9월 30일까지 검토를 마친 총 221건 중 7건 정도만 자치단체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보완할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국회법률은 여기서 제외되면서 사실상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지역구 예산 확보에 눈이 먼 국회의원들의 로비가 작용해서다. 우리나라는 입법권력이 너무 강해지고 있어 행정부의 정책 집행 여지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감사와 견제가 일상 업무인 행정에 비해 입법영역은 그들만의 자유를 만끽하느라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
과거 시행령 등 하위규정에 의거해 집행할 수 있던 정책 상당수가 국회 입법화를 거치면서 국회의 권한은 비대해졌다. 그런데 그만큼 책임과 윤리성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경제위기를 핑계로 핵심 국정과제인 자치분권을 되돌리려는 행위는 국가재정의 수프 속에 지방재정이라는 새우를 양념으로 삼겠다는 심보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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