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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 누명 박씨 "살인사건 부인해 부당 대우 받았다"

뉴시스

입력 2019.10.23 19:16

수정 2019.10.23 19:16

박모씨 1991년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 허위 자백 교도소서 범행 부인하자 2년간 수갑 찬 채 생활해 살 시커멓게 멍들어갔는데도 치료조차 못 받아
【청주=뉴시스】조성현 기자 = 1991년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돼 구속됐으나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아 풀려난 박모(47)씨가 23일 충북 청주의 한 공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0.23. jsh0128@newsis.com
【청주=뉴시스】조성현 기자 = 1991년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돼 구속됐으나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아 풀려난 박모(47)씨가 23일 충북 청주의 한 공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0.23. jsh0128@newsis.com

【청주=뉴시스】조성현 기자 = "2년 간의 교도소 생활은 저에게 정말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1991년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던 박모(47)씨는 23일 뉴시스와 만난 자리에서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기간 동안 수갑은 내 신체의 일부나 다름 없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그해 1월27일 청주시 복대동(가경동 경계구역)에서 방적공장 직원 A(당시 17세)양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택지개발공사장 콘크리트관 속에서 발견된 A양은 양손이 뒤로 묶인 채 속옷으로 입이 틀어막혀져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동일한 범행 수법이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모(57)씨가 최근 이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했으나 당시 경찰은 3개월 간의 수사 끝에 박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법정에 세웠다.

박씨는 "살인사건이 나고 두 달 정도 지나서 경찰이 찾아온 것 같다. 살인사건 때문에 탐문조사를 한다며 2~3번 찾아온 기억이 있다"며 "조사를 받다가 3~4월께 절도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혔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그는 "경찰에 붙잡힌 뒤 강서파출소와 복대파출소를 오가며 8~9일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잠을 잘 수도 없었고, 경찰은 나에게 폭행을 일삼았다. 조사 내내 벽을 보거나 서 있게 하면서 자백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씨에게 자백을 강요하며 원하는 진술이 나오지 않으면 그를 폭행하고, 먹다 남은 짬뽕 국물을 얼굴에 뒤집어 쓴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한다.

박씨는 "진짜 죽겠다 싶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경찰에 범행을 시인했다. 범행을 시인한 뒤에는 당시 절도 혐의로 교도소에 구금됐다"며 "교도소에 수감되고 면회를 온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고 했다.

【청주=뉴시스】조성현 기자 = 1991년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돼 구속됐으나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아 풀려난 박모(47)씨가 23일 자신이 고문 받은 장소인 구 복대파출소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2019.10.23. jsh0128@newsis.com
【청주=뉴시스】조성현 기자 = 1991년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돼 구속됐으나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아 풀려난 박모(47)씨가 23일 자신이 고문 받은 장소인 구 복대파출소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2019.10.23. jsh0128@newsis.com

그는 교도소에서 살인사건을 부인하자 수감 기간 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범행을 부인하자 추가 조사를 위해 찾아온 경찰은 나에게 '싸가지가 없다'며 수갑을 채웠다. 채워진 수갑은 무죄를 받아 교도소에서 나오기 전까지 풀리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수갑을 풀어주지 않았다"며 "살이 시커멓게 멍들어갔는데도 제대로 된 치료조차 못받았다"고 말하며 손목을 감싸쥐었다.

이어 "수갑을 벗을 때는 일주일에 단 한 번 목욕하는 단 30분 뿐이었다. 교도관들에게 수갑을 풀어달라고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며 "살인사건을 부인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 후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교도소에 수감된 채 1·2심 재판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수사기관에서 증거로 제출한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조서 등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없는 점과 공판 과정에서 박씨가 진술이나 범행 재연 상황을 부인하는 점, 사건 핵심 관계자의 진술 번복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박씨는 담당 형사들에게 사과를 받고 싶냐는 질문에 주머니 속 담배를 말 없이 꺼내 입에 물었다.


"사과는 받고 싶지만, 만나고 싶진 않아요. 다만 나한테 왜 그렇게 모질게 했는지 이유는 알고 싶어요. 그리고 그 형사들에 대한 조사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 말고 다른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진상조사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박씨는 그 말을 끝으로 복잡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jsh0128@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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