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여고생 살인 누명' 男, 28년 만에 사연 들어보니

뉴스1

입력 2019.10.23 12:02

수정 2019.10.23 16:21

1991년 1월 충북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A씨(47).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A씨는 당시 경찰의 가혹행위와 폭행에 못 이겨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 뉴스1 박태성기자
1991년 1월 충북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A씨(47).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A씨는 당시 경찰의 가혹행위와 폭행에 못 이겨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 뉴스1 박태성기자


1991년 1월 충북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A씨(47).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A씨는 당시 경찰의 가혹행위와 폭행에 못 이겨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 뉴스1 박태성기자
1991년 1월 충북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A씨(47).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A씨는 당시 경찰의 가혹행위와 폭행에 못 이겨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 뉴스1 박태성기자


충북지방경찰청.© News1 D.B
충북지방경찰청.© News1 D.B

(청주=뉴스1) 박태성 기자 = 1991년 충북 청주 가경동에서 발생한 '택지개발 공사장 여고생 살인사건' 수사과정에서 충북경찰의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폭로가 나왔다.

재판 끝에 혐의를 벗은 A씨(47)는 "담당 형사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억울한 누명 주장한 A씨 "고문에 자백했다"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은 1991년 1월26일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에서 박모양(당시 16세)이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용의자로 붙잡혀 조사를 받은 A씨는 "경찰이 잠을 안 재우고 수시로 구타하며 고문해서 '살인했다'고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A씨의 말을 종합하면 경찰은 그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수시로 폭행하거나 잠을 재우지 않았다.

쪼그려 앉은 자세로 무릎 뒤쪽에 봉을 걸어 거꾸로 매단 뒤 얼굴에 적신 수건을 올리고 짬뽕 국물을 붓기도 했다.

현장검증도 형사들이 미리 알려주고 각본(?)과 다른 행동은 직접 지시했다고 했다.

A씨는 "고문 탓에 경찰에 범행을 자백했다"며 "교도소로 면회 온 어머니가 우는 걸 보고 죄 없는 내가 시인해서 어머니가 눈총받고 손가락질받는 게 싫어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사람을 죽였다는 끔찍하고 억울한 누명은 1·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벗겨졌지만,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A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내가 사람을 피해 다녔다"며 "가까운 동네 슈퍼를 두고 다른 동네에 가서 물건을 샀다. 사건이 있었고 내가 그랬다고 주변 인식이 그럴 것 같아 내가 사람을 피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담당 형사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는 듣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경찰, 사건 유력 관계자 증언에도 개입했나


수사 당시 경찰의 고문 등 강압 수사는 현재 A씨의 일방적인 주장뿐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경찰이 고문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받아내는 등 사건을 적극적으로 조작한 게 된다. 범인을 만들어낸 셈이다.

특히 핵심 증인이자 가경동 사건에서 간신히 달아났던 강도사건 피해자 B씨의 증언에도 경찰 개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당시 1심 재판부는 A씨에 대한 무죄 판단 이유 중 하나로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오락가락했던 B씨의 진술과 증언의 신빙성을 지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범행 이후 A씨를 처음 만난 직후에 '피고인의 목소리가 범인과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경찰 3차 진술)'고 했다.

경찰 4차 진술에서는 '범인 음성과 너무 똑같았다'고 번복했고, 재판 증인신문에서는 '목소리가 긴가민가해 잘 모르겠다'고 재차 말을 바꿨다.

또 사건 직후 범인의 얼굴 윤곽에 대해 '정확히 모르겠다(경찰 1차 진술)'고 했던 B씨는 경찰 4차 조사 이후 피고인을 만나고 나서는 '사건 당시 인상착의를 봐뒀기 때문에 범인임을 확신한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에서는 '범인이 일부러 보여주지 않았고, 당황해 범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확신은 없지만, 범인이 피고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씨 진술의 일관성이 없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술이 명료해지고 있는 점에 비춰 진술은 신빙성이 없어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는 "구속되기 전 어머니와 B씨를 찾아갔다"며 "그분이 내가 아니라고 했던 기억은 있다"고 말했다.


◇충북경찰, 과거 수사 진상조사 나설까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현재 경기남부경찰청에서 맡아 수사하고 있다.

이춘재 자백에 2건의 청주 미제 살인사건이 포함됐지만, 충북경찰은 수사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금껏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충북경찰이 1991년 직접 수사했던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의 당시 용의자가 수사과정에서의 고문과 가혹행위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충북경찰이 제3자가 아닌 직접 대상이 된 셈이다.

A씨를 조사했던 수사관들은 모두 퇴직한 상태며 관련 조사 자료도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최근 경찰의 날 행사에서 "경찰은 역사적 전환점을 맞아 지난 과오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면교사로 삼아 온전하게 책임을 다하는 본래적 수사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과거 수사에 대해 충북경찰이 명확한 진상조사를 벌이고, 과오가 드러날 경우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줄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충북경찰 관계자는 "현재 경기남부청에서 사건 진범을 두고 수사 중으로 아직 진상조사는 결정된 것이 없다"며 "사건 윤곽이 명확히 드러나는 마무리 시점에 관련 대책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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