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고향으로 해외로 ‘설레는 추석’..고시촌·쪽방촌은 "명절이 더 쓸쓸"

이병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11 15:32

수정 2019.09.11 15:32

기차역엔 귀성 인파 발길 분주
연휴맞아 여행객들로 공항 북적
학원가엔 특강 줄서는 취준생들
독거노인 "가족 연락 기대 안해"
11일 서울 동자동 쪽방촌 게시판에는 '추석명절 공동차례 진행 안내'라는 글이 붙어 있다. 사진=이진혁 이병훈 오은선 기자
11일 서울 동자동 쪽방촌 게시판에는 '추석명절 공동차례 진행 안내'라는 글이 붙어 있다. 사진=이진혁 이병훈 오은선 기자
11일 서울 노량진 한 고시학원에 추석특강 포스터가 붙여 있다. 사진=이진혁 이병훈 오은선 기자
11일 서울 노량진 한 고시학원에 추석특강 포스터가 붙여 있다. 사진=이진혁 이병훈 오은선 기자
11일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에서 여행객들이 출국 절차를 밟고있다. 사진=이진혁 이병훈 오은선 기자
11일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에서 여행객들이 출국 절차를 밟고있다.
사진=이진혁 이병훈 오은선 기자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1일 서울 시민들은 고향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흘 간의 짧은 추석 시간을 하루라도 가족들과 더 보내기 위해 시민들은 이른 오전시간부터 공항과 열차역을 찾아 북새통을 이뤘다.

반면 '쓸쓸한 명절'도 공존했다. 수험생들은 고향집 대신 '추석 특강'이 열리는 강의실을 찾았다. 이들은 가족과의 통화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얼마 남지 않은 시험 준비에 분주했다. 가족 사진으로 그리움을 달래는 쪽방촌 독거노인들에게도 추석이란 먼 단어였다.

■비행기·열차 타고 '고향 앞으로'

이날 오전 9시께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입국장은 명절 귀성과 여행을 위해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연휴를 앞둔 탓에 평소에 매진이 되지 않던 노선 티켓도 모두 매진됐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부산, 제주 뿐만 아니라 울산 등 지선 노선까지 모두 매진된 상태"라며 "어제부터 공항에 고객이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대한항공은 귀경길 고객이 늘어 안내 직원을 일부 증원시키기도 했다.

연차를 내고 울산으로 내려간다는 김지애씨(38)는 "회사에서 연차 소진을 권장해 고향에 일찍 가게됐다"며 "'결혼 언제하냐'는 잔소리 때문에 귀경을 고민했지만 그래도 가족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가족들과 서귀포로 여행을 떠나는 이진수씨(41)는 "연휴 때 마다 염두했던 호캉스를 이제서야 가게됐다"며 "나는 조금 피곤할 지 몰라도 어머니와 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김포공항 국제선도 여행객으로 사람이 북적였다.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줄이 이어졌고 안내 직원들이 혼란스러운 입구를 정리했다.

중국 상하이로 향하는 김수호씨(42)는 "형님네 가족이 중국에 살아 연휴때 찾아뵙기로 했다"며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왕래가 적어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고 전했다.

서울역도 귀성 인파로 북적였다. 가족 단위 귀성객들은 오전 일찍부터 고향으로 향하기 위해 역사를 가득 메웠다. 아내, 딸과 함께 고향 구미로 향하는 이학인씨(39)는 "연차를 내 하루 일찍 고향을 찾는다"며 "추석 선물로 물건도 드려봤지만, 역시 현금을 가장 좋아하시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고향 강원 횡성을 찾는 대학생 이승화씨(22)는 "취업에 대한 이야기가 부담되긴 한다"면서도 "방학 때도 내려가지 못해 가족과 오래 있으려고 한다"고 했다.

한 귀성객은 "티켓을 샀다고 생각했는데 결제가 안돼 표가 취소됐다더라"며 "남는 표가 나올때까지 기다려볼 계획"이라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수험생·독거노인…추석 '먼 얘기'

고향으로 여행지로, 분주한 연휴지만 서울에 남아 더 분주한 이들도 있다.

같은 날 노량진 학원가는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로 건물마다 가득 차 있었다. 고시학원 자습실엔 미리 자리를 잡지 못한 수험생들이 서성였고, 근처 카페는 공부하는 학생들로 독서실을 방불케할 만큼 조용했다. 특히 학원에서 단기로 개설한 '추석특강'을 듣기 위해 일부러 연휴에 노량진을 찾아 온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학원 카페에서 공부 중이던 공무원 준비 4년차 한모씨(27)는 "이런 큰 명절에 가면 괜히 친척들 얼굴 한 번 더 보게 돼 눈치만 보인다"며 "집에 가고 싶으면 평소에 한 번씩 가는 편이고, 명절은 오히려 더 피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한씨는 "최근 '취업했니'라는 질문이 실례라는게 많이 알려져 직접적으로 물어보진 않지만, 스스로 위축되는게 싫어서 안 가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편입준비생 임모씨(25)도 이번 추석은 공부에 매진하기로 했다. 임씨는 "평소에도 딱히 할 일이 없는 시험준비생에게 명절은 연휴라기 보다 오히려 일정"이라며 "그래도 요새는 명절이라고 특별히 모여야한다는 분위기가 많이 없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취업준비생 오모씨(25)는 "오히려 가족들이 다 친척집에 간 명절 연휴가 방해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며 "이번 연휴에 계획한 토익스피킹 점수를 따기 위해 막판 스퍼트를 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동자동 쪽방촌의 독거노인들에게도 추석은 낯선 이야기였다.
노인들은 주변 공원에서 오전부터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추석 명절 공동차례 진행'이라는 게시물을 유심히 보던 윤모씨(76)는 "추석때 먹을 음식 장보려고 나왔던 길"이라며 "3남매가 있지만 연락은 잘 되지 않는다.
이번 추석도 기대가 안 된다"며 아쉬워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이진혁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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