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북한은 엘도라도가 아니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14 17:11

수정 2019.08.14 17:11

남북경협, 대박론 말하거나 극일 차원서 접근해선 안돼
北 체제변화에 주안점 둬야
[구본영 칼럼]북한은 엘도라도가 아니다
지난주 한·일 무역갈등의 한복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새 화두를 던졌다. "남북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단숨에' 일본 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요지였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관련 기사에 "뜬금없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네티즌의 냉소적 반응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북한이 지난달 25일 이래 새벽마다 '웨이크업콜'하듯 탄도미사일을 쏴대는 판이어서다. 그것도 남한 전역을 사정거리로. 심지어 북측은 문 대통령이 '평화경제'를 강조한 다음 날 "맞을 짓을 하지 않는 게 더 현명한 처사"(외무성 대변인 담화)라며 두 발을 더 쐈지 않나.

북한이 찬물을 끼얹고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평화경제가 극일의 요술방망이일 리는 없다.
일본이 당장 핵심 소재·부품 수출제한을 통해 우리 첨단산업의 급소를 누르려 하는 터에 남북 경협은 요원한 얘기라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고도의 기술력이지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이 아니다"(전윤철 전 경제부총리)는 말이 정곡을 찌른다.

북한은 세계 최빈국 반열이다. 구매력도, 기술력도 없는 곳에 투자해 당장 큰돈을 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경협의 효과를 추정하는 보고서들이 모두 북한의 시장경제화와 비핵화를 대전제로 삼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김정은정권이 언제 이 선결조건을 충족시킬지 극히 불투명하다. 현재 북한의 유일한 경쟁력인 저임금 구조도 개혁·개방 후엔 존속이 불가능하다. 이런 북과 손잡고 '단숨에' 일본이란 기술 강대국을 따라잡는다니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이다.

물론 길게 보아 남북 경협으로 시장이 넓어지는 건 맞다. 그렇지만 황금 노다지로 뒤덮인 전설의 엘도라도가 펼쳐질 것으로 착각해선 곤란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제기했을 때다. 필자가 칼럼으로 그 '과도한 희망사항'을 비판했던 기억이 난다. 통일 아닌, 북한과의 공존을 통한 문재인정부의 평화경제론의 현실성은 더 엷어 보인다. 북 세습정권이 개혁·개방 알레르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동서독 간 교류협력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2차대전 후 시장경제의 서독은 20여년 만에 경제강국으로 부활한다. 이를 토대로 서독이 1972년 기본협정 체결 후 사회주의 동독에 막대한 지원을 한 건 사실이다. 통독 때까지 19년간 1044여억마르크(62조여원)의 현금과 물자를 지원했다는 추정도 있다.

다만 서독은 게르만족 특유의 차가운 이성으로 접근했다. 우리의 개성공단과 같은 방식의 경협이 아니라 서독 정부가 직접 차관이나 현물을 동독에 제공하면서다. 그 반대급부로 정치범 석방 등 인권개선과 동독인의 서독방송 청취 등 건건이 꼬리표를 달았다. 서독 방문 시 동독 주민들에게 여행비를 지급한 것도 동독 체제 변화를 이끈 마중물이었다.

그렇게 해서 1990년 통독을 일궜지만, 독일 경제는 이후 십수년간 홍역을 치렀다. 옛동독지역 부흥을 위해 서독 납세자들은 더 큰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동서독 협력이 대박을 안긴 게 아니라 탄탄한 서독경제가 통독의 후유증을 극복했을 뿐이었다.

우리도 경협을 대박을 터뜨리는 차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정략적 목적으로 '관제 민족주의'를 동원할 의도가 아니라면 회심의 극일 카드로 포장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오로지 안보 리스크를 줄이며 장기적으로 민족경제의 동질성을 확보하는 당위성에 방점을 찍는 게 정도다.
그렇게 서서히 북한을 시장경제체제로 유도해 나가면 그 결과로서 통일한국의 경제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법하다.

kby77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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