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버닝썬, 무엇을 남겼나] (상)민낯 드러난 '마약 한국'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19 10:59

수정 2019.05.19 10:59

[버닝썬, 무엇을 남겼나] 
김상교씨(29)의 폭행사건이 발단이 된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 사태'. 경찰이 '마약' '성폭행' '경찰 유착' 등 관련 수사를 시작한지 110여일이 지났지만 초라한 수사결과만 남긴 채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했다.
지난 14일 빅뱅의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9)와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34) 등의 구속영장 신청이 기각되면서 거창했던 수사의 끝이 흐지부지되고 있는 모양새다. 경찰은 보강 수사를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한편으로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도 내비쳤다. 폭행사건으로 시작된 이 수사는 용두사미 형국으로 끝나가지만 한국 사회의 치부를 다시금 들춰냈다.
'마약청정국'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사회특권층 사이에 깊숙히 침투해 있는 '마약 한국'의 모습은 여실히 드러났다. 경찰의 유착관계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마약류사범 단속 건수
(명)
2014년 9984
2015년 11916
2016년 14214
2017년 14123
2018년 12613
(경찰청)

■'마약 오염국' 현실 드러내
신기루와 같았던 '마약 청정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국민들이 가장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바로 젊은 사회특권층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마약 투약 실태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었다. '마약 청정국' 기준은 인구 10만 명당 20명 미만으로 1970~1980년대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이후 마약사범들이 대거 검거되면서 한 동안 세계에서 얼마 되지 않는 '마약 청정국'으로서의 위상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 2016년 마약청정국 기준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 20명을 넘어서면서 이 위상은 허상이 됐다.

19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검거된 마약사범은 1만2613명으로 '30만 마약사범' 시대를 맞이했다. 현재 우리나라 마약사범 수는 10만명 당 27.5명이다.

그러던 중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서울 강남 인근 유명 클럽의 영업사원(MD)와 손님들 사이에서 소위 '물뽕'이라 불리는 GHB, 환각물질 아산화질소로 만들어지는 '해피벌룬' 등 변종 마약류 등이 유통된 정황이 포착되면서 마약 한국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클럽과 유흥주점 내 마약 투약행위 외에도 성범죄의 용도로 마약을 활용한 각종 의혹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인터넷 소셜미디어(SNS), 국제우편 등을 통해 일반인들도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경찰은 이에 즉각 마약 집중단속에 나서기 시작했다. 두 달여간의 집중단속 끝에 먀약류사범 1677명을 검거했고 566명을 구속했다. 이중 버닝썬과 아레나 등 강남 클럽 관련 마약 사범은 104명이 검거됐고 16명이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인 황하나씨(31)와 SK그룹 창업주 손자 최영근씨(32)를 비롯해 가수 박유천(33), 방송인 로버트 할리(61) 등 재벌가 3세와 유명 연예인들도 구속됐다.

약물을 이용해 성범죄를 벌이거나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2·3차 범죄 사범도 69명이 검거됐고 19명이 구속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마약 처벌, 단속, 강화 청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마약 처벌, 단속, 강화 청원
■대중화된 마약, 예방대책은
예상치 못했던 마약 오염국 오명에 여론은 들끓었다.

이달 17일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버닝썬 사건과 관련된 청원이 758건이나 올랐다. 특히 지난 15일에 올라온 버닝썬 사건에 대한 특검과 청문회를 요구하는 게시글은 하루 만에 6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학계와 시민단체도 나섰다.
'한국마약범죄학회'와 '마약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은 "마약퇴치를 강화할 수 있는 국제법을 조속히 제정하라"고 주장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점점 일반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는 마약 범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본다"며 "시작은 재벌3세와 연예인 등 사회특권층의 일탈로 보였으나 수사과정에서 점점 보편화되고 대중화 된 마약 범죄의 실상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마약 공급자와 소비자가 대면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해 마약을 거래하는 등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접촉 방식이 다양해졌다"며 "과거에 비해 마약을 한 번 투약하는 비용도 5~10만원 정도여서 서민층과 주부까지 마약사범이 확산되고 있는 점 등에 대해서도 사법당국이 예의주시하고 기존의 방식과 차별화된 마약 예방대책을 마련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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