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민주당이 100년 집권하려면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06 17:30

수정 2019.05.06 17:30

장기통치 스웨덴 사민당은 ‘국민의 집’으로 갈등 통합
文정부는 여전히 적폐 청산
[곽인찬 칼럼] 민주당이 100년 집권하려면

깃발을 앞세운 파업노동자 수백명이 좁은 마을 길을 따라 걸어간다. 그 앞을 군인들이 막아서지만 시위대는 오로지 전진할 뿐이다. 별안간 따당, 따당, 총알이 불꽃을 튀긴다. 몇몇이 쓰러진다. 주변에 피가 흥건하다. 비명과 아우성. 잠시 흩어졌던 시위대는 죽은 동료를 어깨에 메고 다시 행진을 시작한다.
1931년 5월 14일, 이날 5명이 죽고 5명이 크게 다쳤다.

독재가 판치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피의 현장은 스웨덴의 오달렌이란 작은 마을.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총격을 놓고 스웨덴 여론은 반으로 갈렸다. 보수는 군대를 옹호했고, 진보는 시위대를 두둔했다. 발포를 명령한 대위는 1심에서 유죄를 받았으나 2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지었다. 반면 시위 주동자는 2년반 강제노동에 처해졌고, 사망자 5명은 배상금조차 한 푼도 받지 못했다(윤승희 지음 '스웨덴의 저녁은 오후 4시에 시작된다').

당시 세계경제는 대공황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댔다. 스웨덴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때 페르 알빈 한손이 이끄는 사회민주당이 결단을 내린다. 사민당은 이념 대신 연대와 공동체를 택했다. 좌우 이념논쟁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1932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우파 농민당과 정책연대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다. 이때부터 1974년까지 42년에 걸친 사민당 장기집권이 시작된다.

한손 총리의 대표 공약은 국민의 집(Folkhemmet)이다. 1928년 의회 연설에서 당시 한손 사민당수는 "스웨덴은 좋은 가정과 같은 곳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식구끼리는 못났든 잘났든 서로 돌본다. 부족하면 채워주고 남으면 나눠 쓴다. 요컨대 좋은 집은 따듯하다. 이후 사민당은 한손(재임 14년)~에를란데르(23년)~팔메(11년) 총리를 거치면서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복지국가의 틀을 다졌다.

스웨덴식 복지국가의 대전제는 무거운 세금이다. 세금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세금을 낸 만큼 혜택이 돌아온다는 믿음이 생기면 저항이 무뎌진다. 스웨덴 정부는 납세자에게 바로 그런 믿음을 심었다. 세계 최초로 육아휴직을 도입(1974년)했고, 휴직 시 소득대체율도 넉넉하게 준다. 남성 휴직을 장려하자 유모차를 모는 라테파파가 일상이 됐다. 이 돈이 다 세금에서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스웨덴의 국민부담률은 2017년 기준 43.96%에 이른다. 같은 해 한국은 26.9%다. 국민부담률은 세금에 국민연금, 건보료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합친 금액을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한 수치다. 세금과 연금, 건보료를 지금보다 더 내지 않고 스웨덴 같은 복지를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다.

문재인정부가 2년을 꽉 채웠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진보 집권 100년론을 외친다. 20년에서 50년, 다시 100년으로 확대재생산 중이다. 가능할까? 스웨덴 사례를 보면 어렵다. 사민당은 제3의 길을 걸었다. 국민의 집은 좌우 통합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당 정권은 여전히 자유한국당을 적폐세력으로 간주한다. 국민의 집이 아니라 진보의 집을 짓고 싶어한다.
한쪽 날개가 꺾인 새가 날 수 없듯 보수가 빠진 집은 오래갈 수 없다. 100년 집권을 갈망한다면 더불어 사는 스웨덴식 통합의 정신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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