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칼럼]

‘총 같은 호통’ 대신 비빌 언덕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07 17:24 수정 : 2019.04.07 17:24

"아무 잘못도 없는데 총 같은 호통과 칼 같은 시선을 받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낮에 학교에 가지 않고 교복을 입지 않는다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당했던 학교 밖 청소년이 쓴 표현이다. 열일곱살의 그는 "꿈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었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는데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이 처한 환경은 제각각이지만 겪는 차별은 엇비슷했다.
열여덟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하던 다른 청소년은 가게 주인이 위아래로 훑어보며 "우리는 착한 사람만 뽑아요"라는 말 한마디로 면접을 끝내버리는 경우를 겪었다. 문제아, 비행청소년, 사회부적응자…. 우리 사회가 아직도 학교 밖 청소년에게 갖는 편견이다.

해마다 약 5만명의 청소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전체 36만여명(2016년 기준)의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서 삶을 꾸려간다. 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난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지난해 말 여성가족부의 실태조사에서 '공부가 싫어서' 학교를 그만뒀다는 응답(23.8%) 못지않게 '원하는 것을 배우려고'(23.4%), '특기를 살리려고'(15.3%), '검정고시를 준비하려고'(15.5%)도 많았다. 성인만큼이나 청소년의 삶도 어느 하나의 이유로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가족의 문제,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마음, 성적, 건강 등 여러 변수가 뒤섞여 다수가 걸어가는 초·중·고의 궤도를 이탈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은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공모전과 각종 대회 응시자격이 주어지지 않거나 '학생'이 아니라서 탈락하기 일쑤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세명 중 한명꼴로 초과노동을 하고 인격적 모욕을 당하거나 임금을 받지 못하는 등의 부당 대우를 겪는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겪는 차별과 권리침해, 점점 열악한 상황으로 몰리는 현실은 개인에게도 큰 곤경이거니와 사회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개선하고자 여성가족부는 2014년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뒤 전국에 206곳(2018년 기준)의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를 설립했다. 교육부, 경찰청, 지자체, 청소년 관련 기관 등과 협력해 학교 밖 청소년들을 센터와 이어주고 상담을 통해 개인별 특성과 요구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공부를 지속하기를 희망하는 청소년들에겐 검정고시, 상급학교 진학을 돕고 사회 진출을 원하는 청소년들에겐 진로 선택을 돕는 직업체험 서비스를 지원한다. 구체적인 취업훈련이 필요하면 내일이룸학교나 고용노동부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연계해 취업을 지원한다. 또한 건강관리에 취약한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3년 단위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이를 생애주기별 국가건강검진 체계에 포함시켰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룰 때까지 개별적인 사례관리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지원 프로그램을 청소년들의 특성과 수요, 지역에 맞게 맞춤형으로 가다듬는 것은 물론, 고립되기 쉬운 청소년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소속감을 갖도록 돕는 것도 지속적인 과제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편견, 무시와 함께 도움 받을 곳이 없고 혼자라는 불안을 대표적인 어려움으로 꼽는다. 사회 곳곳에 이들을 위한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 조금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을 차별하지 않고 권리를 존중하며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려면 '총 같은 호통과 칼 같은 시선' 대신 정부와 사회의 격려와 응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김희경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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