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싫어하던 이웃들이 나중에 그러대, 복 받을거라고"

권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05 17:21

수정 2018.07.05 18:26

[감동시리즈-우리함께] ③‘유기견들의 수호천사’ 박정수 아지네마을 소장
8년전 유기견 세마리 키운게 시작..순식간에 열마리로 늘더라고
견사 마련하다 사기 당하고 주민 항의받고… 쉬운 적이 없었어
대형견 130마리 키우는 지금 힘도 들고 돈도 들지만 애들 눈을 보면 천사같아
끝까지 책임 안질거면 처음부터 키우지도 마요
박정수 소장이 신고 있는 강아지 양말
박정수 소장이 신고 있는 강아지 양말


박정수 아지네마을 소장은 한참 고민했다. 박 소장의 기침소리만이 공간을 메웠다. "이 일을 왜 하느냐고?" 이윽고 돌아온 답은 명료했다. "팔자지 뭐." 그 역시도 논리적인 답을 찾지 못한 듯했다. 박 소장은 "전생에 내가 쟤들한테 큰 죄를 졌나봐. 나는 내가 대단한 선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라고 말한 뒤 고민할 새도 없다는 듯 견사 문을 벌컥 열었다.

경기 김포 아지네마을은 대형견 130마리가 살고 있는 유기견보호소다.
박 소장은 72세 나이에도 15㎏짜리 사료 포대를 번쩍 든다. 사료 포대는 박 소장 키의 반만 했다. 사료 포대를 가까스로 지탱하는 굽은 허리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는 "애들이 쉬는 날을 가려서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휴일이 어디 있겠나"라고 말했다. 심지어 박 소장은 지난 5월 난소암으로 대수술을 받고 퇴원한 직후에도 곧장 견사로 향했다.

견사 안의 대형견들은 박 소장이 들어올 때마다 몸집만큼 큰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그를 졸졸 쫓아다녔다. 그는 "애들 눈 보면 천사 같다"며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들의 손을 절대 안 놓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소장은 자신의 자녀를 '사람 자식'이라고 부른다. 생소한 표현에 어리둥절해하는 기자에게 박 소장은 강아지들을 가르키며 "얘들도 내 자식이잖아"라고 했다.

'유기견들의 수호천사'로 불리는 경기 김포 아지네마을 박정수 소장이 대형 유기견을 돌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박씨는 유기견보호소 아지네마을에서 130여마리의 개와 함께 산다. 사진=서동일 기자
'유기견들의 수호천사'로 불리는 경기 김포 아지네마을 박정수 소장이 대형 유기견을 돌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박씨는 유기견보호소 아지네마을에서 130여마리의 개와 함께 산다. 사진=서동일 기자

■보신탕집 신세 유기견 눈에 밟혀 아지네마을 시작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했던 그의 삶이 바뀐 건 지난 2010년부터였다. 박 소장은 당시 살던 남양주 집 근처 산에서 유기견 세 마리를 발견했다. 이 개들은 양 눈에 진드기가 가득할 정도로 방치돼 있었다. 새끼를 낳으면 곧장 보신탕집으로 팔려나갈 개들이었다. 박 소장은 "애들이 날 보자마자 벌렁 드러누워서 애교를 부렸다"고 회상했다.

결국 박 소장은 개 주인에게서 이 개들을 70만원에 샀다. 세 마리였던 개들은 곧 열 마리로 늘어났다. 새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박 소장은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아지네마을을 시작했다.

호락호락한 일이 없었다. 견사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주변 지역 주민들의 항의로 상처받기도 했다. 박 소장은 "이웃 주민들한테 인정받는 데 6년 걸렸다"며 "나중에 주민 한 명이 '복 받으실 거예요' 하고 가는데 울음이 북받치더라"고 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았다'던 박 소장의 삶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는 포목 도매점 막내딸로 태어나 숙명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 당시는 어지간히 유복한 집이 아니면 대학 문턱을 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남편 역시 사업을 크게 해 부족함 없이 지냈다. 그는 "막상 아지네마을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까 입을 옷이 없었다"며 "이태리제 마후라(머플러)를 두르고 애들 밥 주기도 했다"고 웃어보였다.

지금은 빚더미에 올라앉았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노후자금은 진작에 처분했다. 한 달에 1500만~2000만원의 운영자금이 들기 때문이다. 사료값만 300만원이다.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인 그가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박 소장은 "10억원이 보통 돈이 아니라지만 써보니 막상 쓸 게 없더라"며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아지네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개 벽화
아지네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개 벽화

■"나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오로지 아지네야"

박 소장은 견사 옆에 딸린 조그만 컨테이너에서 생활한다. 어차피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오롯이 개들을 위해 쓰기 때문에 괜찮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소장은 오전 6시쯤 눈을 뜨면 신경안정제부터 찾는다. 그는 "일어나면 오늘은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하나 싶어 심장이 막 뛴다"고 했다. 한참 마음을 다스리고 8시쯤 본격적인 일과를 시작한다.

먼저 전날 견사에 깔아둔 신문지를 갈아준다. 그리고 하나하나 밥을 준다. 더러워진 견사는 매시간 확인해서 깨끗하게 관리한다. 박 소장은 130마리나 되는 유기견들 전부에게 개별 밥그릇과 물그릇을 준다. 그는 "다른 곳(보호소) 보면 수십 마리씩 몰아넣고 한꺼번에 밥을 주지만, 그럼 깨끗하지도 않고 못 쓴다"며 "나는 누가 와서 봐도 떳떳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건강은 늘 뒷전이었다. 허리디스크, 천식, 공황장애 등 그가 앓고 있는 질환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심할 때는 강아지들이 짖을 때마다 공황장애 증상이 찾아왔다. 박 소장은 "얘들은 대형견이라 안락사밖에 안된다"며 "내가 살리겠다고 구한 애들인데 어떻게 포기하겠나"라고 말했다.

한창 이야기하던 박 소장이 생각만 해도 우스운지 연신 킥킥대며 지난 4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수술하러 갔던 날을 화두에 올렸다. "병원 가기 직전까지 애들 보고 있었거든. 그때 신고 있던 장화를 병원까지 신고 갔던 거야.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보더라고. 수술 끝나고 우리 친언니가 '막내야, 여기 신촌인데 장화는 너무했다'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니까."■"끝까지 책임지지 않을 거면 애초에 키우지 마"

박 소장은 개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게 내 소원인데, 10년 안엔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견사를 바라봤다. 그는 요즘 비영리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체에서 후원할 때 세금계산서를 떼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고군분투하던 박 소장은 4년 전 아지네마을 인터넷 카페가 생기면서 든든한 후원군을 얻었다. 회원수는 7800여명에 달한다. 가끔 가다 아지네마을을 찾아주는 자원봉사자들도 큰 힘이 된다. 아지네마을의 활동비에 턱없이 모자라지만 매달 200만~300만원의 후원금도 들어온다. 박 소장은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통장째 올려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이런 박 소장에게 지난해 수상한 '대통령표창'은 자부심이고 뿌듯함 그 자체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국민추천포상에 박 소장을 추천한 건 아지네마을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수많은 유기견 보호단체 중에 대통령표창을 받은 건 아지네마을이 처음이다. 박 소장은 "사실 처음엔 몸이 힘들다 보니 대통령표창이라고 해도 와닿지 않았다"며 "근데 이제는 이거(대통령표창)로 자부심이 생겼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박 소장은 쉴 틈도 없다는 듯 곧바로 견사 안으로 들어갔다. 땀방울이 빗물처럼 흘러나와 온 얼굴을 적시지만 수건으로 대충 닦아낸다. 그러고는 밥그릇에 털은 안 떨어져 있는지, 견사는 깨끗한지 하나하나 직접 확인한다. 이렇게 그의 손을 거친 유기견이 400~500마리다.
박 소장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며 기자를 불러세웠다. "끝까지 책임지지 않을 거면 애초에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기 식구 같을 텐데 어떻게 버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ktop@fnnews.com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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