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52년간 매달 600명에 공짜 이발 '사랑의 가위손'

오은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8 17:05

수정 2018.06.28 18:53

[감동시리즈-우리함께] ② 도봉구 '향토이발관' 민병학씨
이발사 민병학씨는 지난 52년간 36만5000여명에게 무료 이발 봉사를 해 지난 2016년 행정자치부 국민추천포상 훈장을 받았다. 민씨의 이발관은 정부가 지정한 '착한 가게'로도 인정받았다. 사진=김범석 기자
이발사 민병학씨는 지난 52년간 36만5000여명에게 무료 이발 봉사를 해 지난 2016년 행정자치부 국민추천포상 훈장을 받았다. 민씨의 이발관은 정부가 지정한 '착한 가게'로도 인정받았다. 사진=김범석 기자


"돼지띠여? 나보다 밑이네!"
"면도도 할거지? 끝나면 커피도 잡숫고 가~"
지난 15일 서울 도봉구의 한 오래된 이발소에서 만난 민병학씨(77), 그가 52년간 운영 중인 '향토이발관'에서는 매시간 정겨운 대화들이 오간다.

친근한 말투와 이미 오래 전부터 친구인 것 같은 손님들과의 편안한 대화, 함께 울려퍼지는 청량한 가위질 소리는 지하 이발소의 작은 공간을 서울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준다.
이발을 마친 손님들은 직접 머리를 감는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민씨가 감겨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손님들은 스스로 머리를 말리고 로션도 직접 바른다. 후식까지 알뜰하게 챙긴 후 손님이 내민 것은 바로 '무료 이발 초청권'. 혹은 꼬깃꼬깃 주머니에 넣어둔 단돈 3000원이 고작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이발 봉사를 하겠다고 다짐해온 민씨의 철학이 담긴 요금이다. ■"나만큼 오래 머리깎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민씨는 도봉구에서만 52년째 이발소를 운영 중이다. 동시에 이발 봉사도 52년차가 됐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매번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출장 이발 봉사를 해 왔다. 보육원, 양로원, 장애인 복지관 등 민씨가 다니지 않은 도봉구의 복지시설이 없을 정도다. 독거노인과 장애인, 불우이웃에게는 돈도 받지 않았다. 그러다 30년 전부터는 '이발 무료 초청권'을 만들어 주변 복지시설에 나눠줬다. 도장이 찍힌 이 초청권을 가져오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이발을 해준다.

가격도 32년째 올리지 않았다. 노인은 3000원, 일반시민은 5000원이다. 면도 추가비용도 받지 않는다. 향토이발관은 물가 안정에 힘썼다는 이유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에서 지정해주는 '착한 가게'로도 인정받았다.

그러다 3년 전, 민씨는 하지정맥류로 다리 수술을 받았다. 오랜 시간 서서 일한 탓이다. 그전에는 쥐가 난 다리를 주무르며 머리를 자르러 다녔다. 민씨는 "출장 이발 봉사는 이제 더 이상 다니기 힘들지만 그때 만난 인연들이 여전히 이발소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민씨가 지금까지 무료 이발을 해준 사람들만 한달에 약 600명, 신문배달원 이발 봉사까지 나가던 시절엔 한달에 1000명까지도 머리를 잘랐다. 52년 동안 어림잡아 36만5000명은 무료로 이발을 해준 셈이다. 이 수많은 인연 중 다시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민씨는 가격을 올리지도, 장소를 옮길 수도 없다.

■"노인은 부모요, 젊은이는 내 형제요, 고아는 내 자식이지"
민씨는 지금의 세종시인 충남 연기군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3남2녀 중 장남이다. 아버지가 암으로 52세에 돌아가시고 난 뒤엔 초등학생의 나이로 가장이 됐다.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나무를 해다 팔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4㎞를 걸어가 3㎏ 정도 나무를 해 오면 겨우 쌀 한말을 받았다. 이후엔 오전 4시반부터 오후 11시까지 일해야 했던 작은 약국에서 사환 노릇을 하며 월급을 받았다. 민씨는 "당시엔 돈이 너무 궁해 안 해본 일이 없다"며 "나중에 돈을 벌면 꼭 베풀며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다 우연히 이발소 일을 하는 친구를 따라 면도 기술을 배우게 됐다. 이발 기술도 어깨 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1966년 8월 20일,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곧장 도봉구로 터전을 옮겨 이발소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이발소를 개업했던 자리가 재개발돼 1993년 지금 자리로 옮기기까지 도봉구를 떠난 적이 없다.

한자리에서 오래 있다보니 단골도 수없이 많이 생겼다. 무료 이발 초청권 때문에 고마워서 더 찾아주는 손님도 있고, 싼 가격 때문에 3대째 함께 방문하는 가족들도 있다. 착한 가격으로 전국에 소문이 나다보니 서울은 물론 경기도 각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제법 많다.

민씨는 "그중에서도 고아원 무료 봉사를 하면서 만났던 친구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만난 탓에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도 민씨를 찾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민씨는 "하루는 어떤 아줌마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들어오길래 누구냐고 물었더니 '성모자애보육원이요!'라고 말하더라. 시집을 갔다며 신랑이랑 같이 찾아와 인사를 하는데, 그런 일도 종종 있다"며 허허 웃어보였다.

좋은 일을 하며 선한 마음을 많이 베풀다보니 칭찬은 저절로 돌아왔다. 향토이발관 벽 한쪽은 온갖 표창장과 감사패로 빼곡하다. 2016년엔 사회복지사들의 추천으로 당시 행정자치부 국민추천포상 훈장도 수여받았다.

하지만 민씨가 특별히 뿌듯하게 여기는 표창은 따로 있다. 1994년에 받은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상'이다. 600년 뒤에 꺼내보는 타임캡슐에 들어간 600명의 명단 중 한 명으로 민씨도 포함됐다. 후대가 볼 수 있도록 이름을 남긴다는 일은 누가 받아도 뿌듯한 경험일 터. 민씨는 "다 내 가족이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할 일을 한건 데, 자꾸 생각지도 못하게 상을 받게 됐다"며 머쓱해 했다.

30여년 전부터 민병학 이발사는 '이발 무료 초청권'을 만들어 주변 복지시설에 나눠줬다. 사용한 '이발 무료 초청권'이 이발소 한켠에 수북이 쌓여있다(맨위 사진). 민병학씨가 1993년부터 일해온 서울 도봉구 향토이발관 내부 전경. 그는 1966년 이발소를 시작한 이래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까지 도봉구를 떠난 적이 없다(가운데 사진). '사랑의 가위손' 민병학씨가 이발관을 찾은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30여년 전부터 민병학 이발사는 '이발 무료 초청권'을 만들어 주변 복지시설에 나눠줬다. 사용한 '이발 무료 초청권'이 이발소 한켠에 수북이 쌓여있다(맨위 사진). 민병학씨가 1993년부터 일해온 서울 도봉구 향토이발관 내부 전경. 그는 1966년 이발소를 시작한 이래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까지 도봉구를 떠난 적이 없다(가운데 사진). '사랑의 가위손' 민병학씨가 이발관을 찾은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얼마나 남았겠어? 힘 닿는데까지 해야지"

이날 한시간 남짓한 인터뷰 시간 중 향토이발관을 방문한 손님만 다섯명이다. 민씨는 "오늘 오전만 스무 명이 넘게 왔다 갔어. 이 정도는 한가한 편이야"라며 숨을 돌렸다. 그러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일 하겠어. 길어야 3~4년 일텐데…"라고 말하는 민씨를 향해 오히려 손님들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해야지"라며 호통을 친다. 민씨도 허허 웃으며 "힘 닿는데까지 해야죠"라며 또 힘을 낸다.

다리가 좋지 않은 민씨를 걱정하는 딸들에게 그가 늘상 하는 말이 있다. 바로 '내다보고 살아라'라는 것. 주변을 항상 돌아보며 살라는 말이다.

민씨는 "요즘 세대는 또 다르겠지. 근데 내다보고 사니까 이 나이 먹도록 딱히 큰 병도 없잖아"라며 웃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그동안 그는 지역사회를 향한 봉사활동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주로 다른 손님들이 없는 이른 시간에 방문하는 '공짜 손님'들을 위해 매일 새벽 4시반이면 어김없이 이발소 문을 여는 이유도 '내다보는 삶'을 위한 그만의 인생철학 때문이다.

이제 민씨는 본인을 '말뚝'이라고 했다. 출장까지 다니지는 못하지만, 향토이발관에 말뚝처럼 박혀 있으면 흐르는 냇물처럼 손님들이 왔다가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날 민씨가 보여준 무료 이발 초청권의 변천사가 한눈에 담긴 액자와 오래된 흑백사진 앨범은 이미 도봉구의 말뚝이 된 민씨의 지난 세월을 빼곡히 박아놓은 듯했다.

'딸랑'하고 다시 손님이 들어온다. 민씨는 당연하다는듯 "오랜만이네~"하며 손님을 맞는다. 원하는 머리 스타일을 다시 물을 필요도 없다는 듯 능숙하게 가위를 집어드는 그의 모습에선 52년 베테랑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이발이 끝난 후 폐지를 모으는 손님을 위해 민씨는 모아놓았던 신문지를 꺼내든다.
"이거 가져가는거 잊지마!" "아유, 매번 너무 고마워"라며 인사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이발사와 손님이 아닌, 흡사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을 풍겼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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