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잃어버린 가족찾기] "매일 죄인이라는 생각 속에 살죠"

구자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5 13:20

수정 2018.06.25 13:20

1984년 9월 4일 대구 달서구 진천동에서 실종된 김형철군(당시 3세). 김군은 긴 얼굴형에 이마 중간에 흉터가 있으며 머리가 앞 뒤로 많이 튀어 나왔다고 한다.
1984년 9월 4일 대구 달서구 진천동에서 실종된 김형철군(당시 3세). 김군은 긴 얼굴형에 이마 중간에 흉터가 있으며 머리가 앞 뒤로 많이 튀어 나왔다고 한다.

박모씨(64·여)는 한 때 공장 기계 소리만 들으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이 가빠지곤 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30여년전 아들이 사라진 뒤부터다.

25일 경찰청과 중앙입양원 실종아동전문기관에 따르면 김형철군(당시 3세)은 1984년 5월 29일 실종됐다. 당시 대구 달서구 진천동에서 직물 공장을 운영하던 어머니 박씨가 잠시 일을 돌보러 간 사이 아들이 감쪽 같이 사라진 것이다.


박씨는 형철이가 납치된 것을 의심하고 있다. 그날 오전 박씨는 일 때문에 바쁘게 움직이다가 아들이 안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박씨는 아들을 찾던 중에 인근 시장에서 누군가 형철이와 함께 돌아다닌다는 소식을 접했다. 박씨가 부리나케 시장으로 달려가자 실제 어떤 사람이 형철이에게 새 옷을 입히려 하고 있었다. 박씨가 ‘누군데 우리 애 옷을 사입히냐’고 묻자 그 사람은 “애가 너무 예뻐서 옷을 입혀주려 했다”고 얼버무린 뒤 도망갔다.

아이를 찾은 박씨는 혹시나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싶어 아들 옷 뒤쪽에 이름과 연락처 등을 적어둔 채 다시 일을 하러 갔다. 오후 교대로 잠시 분주한 사이 박씨는 아이가 다시 안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공장 직원들을 동원해 아이 찾기에 나섰지만 형철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 박씨의 단란했던 가정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박씨 부부는 공장 문을 닫았고 아들 찾기에만 매달렸다. 경찰 수사력도 동원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당시 해당 지역은 논밭이 무성한 개발이 덜 된 지역이었던 데다 지금처럼 폐쇄회로(CC)TV 같은 시설도 없었기 때문이다. 박씨 부부는 전단지를 뿌리고 전국의 고아원을 모두 찾아다녔다. 그러는 사이 남편마저 세상을 떠났고 집안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박씨와 어른이 된 큰아들만 남았다.

박씨는 “아직도 별 것 아닌 일에 크게 놀라는 등 당시 사건의 후유증이 있다. 평소 그냥 있다가도 문득 아들 생각이 난다”며 “지금도 대구에 살지만 이제 아들을 잃어버린 장소는 일부러 안 가는 경향이 있다. 너무나도 괴롭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돈과 아들을 맞바꾸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와 매일 죄인이라는 생각 속에 산다. 아들을 찾지 못한다면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다"며 “아들을 만날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사과하고 싶다.
아들과 함께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고 싶겠지만 먼저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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