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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가족찾기]하굣길 1시간 거리가 25년까지…“딸 전화만 기다립니다”

박준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27 15:15

수정 2017.11.27 15:15

“학교에서 집까지 버스로 5분 정도 걸리지만 아이 걸음으로는 1시간이나 걸립니다. 그 길을 혼자서 걸어간 뒤 2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25년 전 잃어버린 이은지양(당시 9세·여)을 찾고 있는 아버지 이모씨가 딸에 대한 그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27일 경찰청과 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에 따르면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살던 이양이 사라진 것은 1992년 3월 17일. 재학 중이던 초등학교가 다른 학교와 합쳐지면서 스쿨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던 이양은 이날 청소 당번이어서 스쿨버스를 타지 못했다.

평소 귀가 시간인 오후 4시가 넘어도 이양이 돌아오지 않았으나 이양 부모는 같은 반인 고모 딸과 노느라 늦는다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저녁식사 시간이 돼도 딸이 오지 않자 걱정된 마음에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고 고모 딸은 벌써 귀가했다는 말을 들은 이양 부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씨는 “고모 딸이 은지와 같은 반이어서 둘이 잘 놀아 그날도 그런 줄 알았다”며 “고모 딸은 벌써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기다림에 뜬눈으로 밤을 보낸 다음날 오후 3시15분께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딸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끊어졌다. 곧이어 또 한 번의 전화가 왔지만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양의 부모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단순 가출로 여겼다. 이씨는 “나중에 전화한 사람도 찾았는데 경찰에서는 몇 가지 질문만 하고 풀어줬다"면서 “애 엄마는 5년 동안 전화를 기다리며 집밖을 나가지 못했다. 지금도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해 한이 맺혀있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실종 당일 이양은 체크무늬 바지에 빨간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어릴 적 키우던 고양이가 이양의 엄지와 중지 손톱을 깨물어 두 손가락에는 손톱이 없다. 얼굴에는 큰 수두자국도 두 개가 있다. 단발머리에 누구보다 예뻤던 이양은 그렇게 부모의 곁을 떠난 후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이양 부모는 지금도 여전히 같은 곳에서 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혹시 걸려올 딸의 전화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화기도 한 대 더 장만했다.
집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고 딸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씨는 “은지가 그렇게 되기 며칠 전 그렇게 통닭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얼마나 한다고 그걸 못 사줬다.
넉넉하지 못해서 아이에게 변변한 것 해주지도 못하고 바쁘게 살아 은지 사진도 거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92년 3월 17일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서 사라진 이은지양(당시 9세·여). /사진=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 제공
1992년 3월 17일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서 사라진 이은지양(당시 9세·여). /사진=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 제공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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