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금융권 실적경쟁보다 신뢰경쟁을

박지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16 17:28

수정 2020.01.16 17:28

[기자수첩] 금융권 실적경쟁보다 신뢰경쟁을
2012년 영국 대형은행들은 전·현직 경영진에게 지급했던 보너스를 다시 환수하는 이례적 결정을 한 바 있다. 이들이 금융상품을 잘못 팔아 회사에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HSBC 자회사인 NHFA는 총 2억8500만파운드(약 4300억원) 상당의 장기금융상품을 판매했는데, 금융당국은 그중 87%를 부적절한 판매로 보고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다. 해당 금융상품은 5년간 투자하면 요양비와 의료비를 수령할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가입고객 평균연령이 83세로 나이가 너무 많은 데다 이미 장기요양을 받는 고령자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이에 HSBC는 당시 경영진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 이들에게 줬던 보너스를 다시 받아내기로 했다.

비슷한 시기 로이즈은행 역시 전·현직 임원 13명에게 지급했던 보너스 중 200만파운드(약 30억원)를 환수했다.
이 은행은 대출을 받는 고객에게 의무적으로 지급보장보험(PPI)을 들도록 했다가 논란이 됐다. 이 상품 가입자 3명 중 1명은 보험금을 탈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민국 은행들도 역시 불완전판매의 늪에 빠져 있다. 지난해 불거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는 최근 해당 은행들이 자율배상을 개시하면서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다만 '보상' 말고 '책임'에 대해서는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부터 관련 사건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가 시작된 만큼 이제 누구 책임인지를 놓고 본격 논의가 시작됐다.

올해 시중은행장들은 일제히 고객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뢰의 기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진정성 있게 보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는 제재심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와는 별개 문제다. 제재심에서 나오는 징계는 비자발적이다. 신뢰는 '자발적인 노력'에서야 나올 수 있다. 2012년 영국에서 이례적으로 이뤄진 임원 보너스 환수 역시 이런 표현의 일부였을 것이다.
물론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각 은행에서는 책임지는 모습을 어떻게 보일 수 있을지 조금 더 고민해야 할 때다.
올해 금융권은 실적경쟁만이 아니라 신뢰경쟁도 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금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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