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대통령의 신년사와 경제 인식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9 17:08 수정 : 2020.01.09 17:08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말이 딱 맞는 때가 아니었던지? 1992년 미국 대선을 앞둔 빌 클린턴 대통령 후보의 캐치프레이즈는 정곡을 찔렀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클린턴의 이런 태도가 대통령으로서의 기대감을 높였고, 결국 선거에서 승리를 가져왔다고 모두들 분석했다. 어쩌면 올해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바로 이런 전략적 비전을 내세울 시기가 아닌가 싶다. 4월 총선을 앞둔 임기 중반의 문재인정부가 맞은 상황은 거의 모든 국내외 정치적 이슈가 고착화돼 큰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이런 경제전략을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적절한 전략 변화였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년사를 준비한 일부 사람들도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들어온 수차례 문 대통령의 연설들과 달리 이례적으로 경제 문제가 전면에 내세워졌기 때문이다. 이번 연설에서 경제라는 표현이 언급된 횟수가 이례적으로 많았다고도 한다.

현 경제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경제 전문가들의 그것과는 대단히 동떨어져 있어서 고용, 수출 등의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보려 한다는 비판은 여전히 면치 못했지만, 경제계가 대통령에게서 한 가지 새로운 경제인식 변화로 감지할 수 있었던 부분은 바로 기업 투자환경을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100조원이라는 대규모 투자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고 선언한 점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기업 투자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거나 기업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큰 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정부의 큰 투자프로젝트가 기업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인지, 아니면 좀처럼 투자에 선뜻 나서지 않는 기업들 대신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뜻인지 분명치 않은 것 같다. 신년사 전체 취지에 비춰보면 아무래도 후자로 기울어지는 것 같은데, 이런 경제인식은 매우 아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모든 경제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지금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여력을 축적해 놓고도 국내에서 투자를 늘리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인데, 이런 기업들의 투자의욕 부진 원인으로는 '국내에서는 투자할 곳이 없다'는 인식이 가장 큰 것으로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나 심지어는 이웃 중국에서도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는 신산업 분야가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규제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규제장벽을 해결하지 않고는 실질적인 기업 투자환경 개선은 요원한 것이기에, 경제분야에 큰 인식 전환의 모습을 보이려 했으면 이 부분에서 대담한 제안이 있어야 했다는 말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상생, 공정 등을 강조하는 기조를 더 이상 탓할 필요는 없겠지만 경제계가 희망을 걸어온 혁신 분야에서 대통령이 그 실효성을 모색하고 있는 '규제 샌드박스'에 거의 모든 기대를 걸고 있고, 특히 신산업 등장을 두려워하는 기존 전통산업과의 갈등 문제를 '맞춤형 조정기구'라는 아직 실험해보지 않은 정부 내 제도적 장치로 해결하려 하는 자세도 미덥지 못하다. 이런 문제를 당한 다른 나라들에서나 이와 비슷한 우리나라에서의 시장개방과 같은 경우에서도 어려운 사회적 갈등이 새로운 경제변화의 장벽이 될 때야말로 국정 최고지도자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기업 투자환경 개선이나 규제혁신 이 두 가지 분야 모두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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