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정순민 칼럼]새해 소망은 '협(協)'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6 16:38

수정 2020.01.06 18:08

미리보는 올해의 단어
여럿이 힘을 합친 모습
2019년 '分' 넘어서길
[정순민 칼럼]새해 소망은 '협(協)'
누가 언제부터 '올해의 단어'를 선정해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난 1971년 옛 서독의 독일언어협회가 일종의 신조어나 유행어를 지정·발표하면서 '올해의 단어(Wort des Jahres)'라는 타이틀을 부여한 것을 시초로 보는 이들이 있지만 이 역시 공인된 사실은 아니다. 다만 명확한 것은 하나의 단어나 글자를 통해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또 다른 한 해를 전망해보려는 마음엔 동서가 따로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한 국가가 직면한 과제나 구성원들의 열망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도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옥스퍼드사전은 '기후 비상(Climate Emergency)'을 2019년을 대표하는 단어로 꼽았다. 사용빈도가 100배 이상 늘었을 뿐 아니라 기후 변화(Change)나 위기(Crisis) 같은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구의 현실이 담겨 있다는 게 옥스퍼드의 설명이다.
또 다른 사전인 콜린스가 '기후 행동(Climate Strike)'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스웨덴 출신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올해의 인물로 뽑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적어도 서구사회에선 지난해 기후문제가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중국 등 한자문화권에선 단 한 자의 한자(漢字)로 한 해를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하면서 연호를 레이와(令和)로 바꾼 일본이 2019년의 한자로 령(令)을 선택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선 홍콩 사태와 관련한 한자를 골랐다. 어지러울 란(亂)을 올해의 한자로 선정한 대만 연합보나 홍콩을 뜻하는 항(港)을 고른 싱가포르 연합조보가 그런 경우다. 홍콩의 아주주간도 깨뜨릴 파(破)를 꼽으며 파국으로 치닫는 중국과 홍콩의 앞날을 걱정했다. 한데 중국 국가언어자원연구센터는 엉뚱하게도 평온할 온(穩)을 골라 빈축을 샀다.

우리는 단 하나의 한자보다는 네 자로 이뤄진 사자성어를 선정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교수신문이 지난 2001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대표적이다. 교수신문이 2019년을 설명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를 선택한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공동의 운명체이면서도 서로가 극렬히 반대하고, 극단적으로는 상대방이 죽어 없어지기를 바라는 이런 세태를 단 하나의 한자로 바꾼다면 나눌 분(分)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촛불과 태극기,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뉘고 갈라진 두 개의 목소리가 지난 한 해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안에는 날카로운 칼(刀)이 도사리고 있다.

새해는 분열을 넘어 서로 다른 힘이 하나가 되는 협(協)의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주지하다시피 협은 여러(十) 사람이 힘(力)을 합쳐 밭을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물론 협력하고 화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노릇은 아니다. 오죽하면 글자 안에 힘 력 자가 세 개나 있고, 그것도 모자라 많다는 의미의 열 십 자까지 더해졌겠나. 하지만 두 개로 나뉜 마음을 하나로 만들려는 노력은 언제든 계속돼야 한다.

새해는 또한 혁(革)의 시대가 되길 바란다. 혁은 짐승 가죽을 손으로 벗기고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다. 혁에는 '새롭게 하다' '새로워지다'라는 뜻도 숨어 있다. 하지만 협이 그렇듯이 혁 또한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가죽을 벗겨내는 아픔을 감내해야 가능한 일이어서다. 이는 쇄신(碎身)해야 쇄신(刷新)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름지기 내 몸을 부수지 않고선 나도, 남도 새롭게 할 수 없는 법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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