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수축사회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1 16:49

수정 2020.01.01 16:49

파이가 줄어 공정에 민감한
2030세대 절절한 아우성에
정치 기득권이 귀막고 있어
[구본영 칼럼]수축사회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암울한 처지이더라도 희망의 끈을 꼭 붙들고 싶을 때다. 그러나 지난해 나라 경제의 어려움과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지켜보았던 잔상 탓일까. 찬바람 이는 거리에 선 청춘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가장 활력이 넘쳐야 할 청년들의 어깨가 왜 축 처져 보이는 걸까. 피상적 선입견만은 아니다. 연말 한 언론사(뉴스원)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라. '21대 국회가 2030세대를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할 정책'에 대해서 '일자리 창출'이 27.5%, '결혼·출산·육아 지원'이 26.8%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이 주거지원(20.1%)이었다.


여기에 취업도, 결혼도, 내 집 마련도 뭐 하나 쉽지 않은 청춘의 고단함이 녹아 있다. 현대사에서 지금처럼 청년들의 기가 꺾였던 때가 있을까. 필자가 속한 베이비붐세대는 젊은 날 가난했지만 다행히 고속성장기를 맞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보릿고개를 넘은 윗세대도 절망하진 않았다. '한강의 기적'이 저만치 보였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는 '맨발의 청춘'의 절절한 아우성에 응답하는 데 대개 무능했다. 이미 기득권이 된 '86세대'가 주축인 문재인정부도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고 나라 곳간을 헐었지만, 노인 알바를 늘리는 게 고작이었다. 획일적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근로제를 밀어붙였지만, 청년 취업난만 가중시키는 역설도 빚어냈다. 대졸취업자 중 대학 졸업장이 필요없는 데서 일하는 하향 취업자가 지난해 30%를 넘었다는 한국은행의 통계가 이를 실증한다.

2030세대는 베이붐세대의 자녀들이다. 경제가 쑥쑥 커지던 부모 시대와 달리 이른바 '수축사회'에 직면하고 있다. 졸아든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면서 공정의 가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근혜정부 때 최순실씨 딸 대입비리 등에 가장 분노했던 그들이 문재인정부에 맨 먼저 실망하는 낌새다. 전 정부의 적폐를 추상같이 단죄했던 문재인정부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자 전 정권 뺨치는 반칙 사례가 쏟아지면서다. 조국 전 장관 딸의 부산의전원 부정입학 의혹이 그 빙산의 일각이다.

물론 '수축사회'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혹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수축사회에 진입하기 시작했다"(홍성국 저, '수축사회')고 본다. 성장의 정체로 파이가 줄어들면서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가 대세로 자리잡았다는 뜻이다.

2030세대가 수축사회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된 느낌이다. 흔히 밀레니엄 세대의 특징으로 미래에 대비한 근검절약보다 현재의 만족을 위해 소비하는 '욜로 라이프'를 꼽는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청년층 스스로 이를 원한다기보다 그런 선택을 강요 당하고 있다면 비극이다.

수축사회의 주된 특성은 갈등이 빈번하고 광범위해진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국민통합을 일궈야 할 정치권이 외려 갈등의 진원지여서 더 큰 문제다. 여야는 지난 연말 '밥그릇 싸움'이 본질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등을 둘러싸고 극한대치를 벌였다.
데이터3법이니, 청년기본법이니 하는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미룬 채….

그러니 오늘의 청년들에게 그저 "노~력하라"는 충고는 한낱 '꼰대질'일 뿐일 게다. 알아서 각자도생하라는, 하나마나한 얘기라서다.
그러나 어쩌랴. 현실이 고달프더라도, 진취적 도전은 늘 청춘의 몫인 것을.

그래서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말이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운명의 신은 여신이라 과단성 있는 젊은이에게 더 끌린다"라던.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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