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산업기술 R&D, 신뢰·공감 되찾길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0 17:09

수정 2019.12.10 17:09

[특별기고] 산업기술 R&D, 신뢰·공감 되찾길
우리나라 정부 연구개발(R&D)은 과거 경제성장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고 인정받았지만, 근래에는 투자 대비 효율성이 낮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 지난 7월 일본의 갑작스러운 수출규제로 위기론이 대두됐을 때도 대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그간 추진돼 온 소재부품기술 투자 효과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컸다.

투자성과에 대한 비판 외에도 연구자들의 잘못된 연구비 사용이 적발될 때마다 수많은 질타가 쏟아진다. 이 때문에 연구관리를 엄격히 하기 위한 여러 규정이 만들어지고, 관리기관의 감독이 강화되곤 한다. 한편에서는 연구자의 몰입도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복잡한 규정의 폐해를 지적하지만, 부정사용을 더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을 때마다 관리규정이 강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자율적 연구환경 조성과 부정사용 근절이라는 일견 모순된 목표를 달성하려면 결국 신뢰에 기반한 정책지원과 세심한 제도설계가 필요하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정책효과를 높이려면 세심한 인센티브 구조 설계가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의 '넛지(Nudge)' 이론이다. 넛지이론의 예로 인용되는 납세유도 방식은 R&D 관리에도 시사점을 준다. 미국 미네소타주 사례를 보면 '세금을 내지 않으면 처벌받습니다'보다 '이미 미네소타 주민의 90% 이상이 납세의무를 이행했습니다'라고 안내문을 보낼 때 자진납세 효과가 훨씬 컸다고 한다. 정부 자금을 잘못 사용하면 엄벌한다는 경고 대신 99%의 연구자가 올바르게 연구비를 사용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연구비 부정사용 방지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국민세금으로 지원하는 국가 R&D인 만큼 올바르게 사용하는지 감독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지만 연구자의 자긍심을 해칠 정도로 지나치게 의심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정부 R&D에 대한 일부 부정적 인식은 많은 사람이 기술혁신의 성과를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R&D를 수행하는 연구자와 지원기관이 R&D 성과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산업부는 매년 산업기술 R&D대전을 통해 국가 R&D 성과를 일반인에게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기술혁신으로 산업을 재편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12월 13일부터 이틀간 서울 영동대로 코엑스에서 174개 기관이 출품한 기술·제품을 선보인다. 산업부가 지원한 고난도 기술개발 성과와 미국 CES 혁신상을 수상한 혁신제품 등 신기술을 체험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제조혁신, 편리한 수송 등 5대 분야에서 산업재편의 잠재력을 갖는 기술혁신 결과물을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연구자, 일반인이 함께할 수 있는 산업대전환 콘퍼런스, 알키미스트 아이디어 공모전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개최된다. 이런 소통과 체험의 시간은 정부 R&D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본의 반도체 핵심부품 수출규제는 R&D를 통한 기술자립이 중요함을 다시금 일깨우는 기회가 됐다. 지난 6월 발표된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부터 소재부품 총괄지원체계 구축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효과적 지원과 민간의 자율적 연구몰입이 조화를 이룬다면 산업기술 R&D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켜온 우리 민족의 저력이 기술혁신을 통한 산업재편에도 발휘되리라 믿는다.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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