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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스포츠가 지닌 공정·정의·배려의 힘

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05 17:42

수정 2019.12.05 17:42

[차관칼럼] 스포츠가 지닌 공정·정의·배려의 힘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체조계를 뒤흔든 사건이 있다. 래리 나사르 사건이다.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 전담 의사였던 래리 나사르는 30여년간 선수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나사르는 최대 360년형을 선고받아 화제가 됐다.

나사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독립적인 스포츠 인권기구 'Safe Sport'가 설립됐다. 'Safe Sport'는 미국올림픽위원회(USOC)와 미국 경기단체연맹으로부터 분리돼 운영되며, 성폭력과 아동폭력에 대해서는 배타적 권한을 가지고 직접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사르 사건으로부터 약 1년 후인 올해 1월 우리나라 체육계에서도 성폭력을 고발하는 이른바 '미투' 운동이 이어졌다. 이를 통해 그간 우리 사회의 눈길이 닿지 않던 곳에서 행해졌던 성폭력 사건들이 민낯으로 드러났다. 체육계는 물론이고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특히 초·중·고등학교 어린 시절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증언에 온 국민이 공분했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관계부처 합동으로 '(성)폭력 등 체육계 비리 근절대책'이 마련됐고, 국회에서는 운동선수 보호를 위한 법안들이 발의됐다. 민관 합동 스포츠혁신위원회가 구성돼 체육계 전반의 구조개선을 위한 7차례의 권고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1월 27일 스포츠윤리센터를 신설하고 성범죄 체육지도자의 자격을 최대 20년간 박탈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운동선수들의 인권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스포츠 비리 조사와 체육인 인권보호를 전담하는 스포츠윤리센터는 미국의 'Safe Sport'처럼 체육단체로부터 독립된 기관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 기관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이 지닌 중요성은 남다르다. 그간 스포츠 비리나 인권침해가 발생할 경우 체육단체 내부에서 조사와 징계 수위가 결정됐다. 그 결과 '솜방망이 처벌'이 만연했다. 폐쇄적 네트워크 안에서 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는 어려웠다. 스포츠윤리센터가 설립되면 외부 전문가에 의한 공정한 조사와 객관적 징계 수위 검토는 물론이고 피해자 보호도 체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폭력·성폭력 가해 체육지도자에 대한 자격제한도 강화된다. 성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는 20년간,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는 10년간 체육지도자가 될 수 없다. 상해·폭행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도 10년간 체육지도자가 될 수 없다. 선수가 지도자로부터 폭행이나 성폭력을 당하더라도 가해 지도자가 다시 현장에 복귀할 것이 두려워 밝히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규정이다. 특히 어린 선수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지난 10월 전국체전에서 일부 관중이 고등학생 여자 선수에게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스포츠의 가치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스포츠를 좋아하는가. 공정한 규정을 놓고 최선을 다해 경쟁하고,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결과에 승복하고,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것이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이고 궁극적인 목적일 것이다.
지도자와 학부모는 물론 사회 전체가 어린 선수들이 밝고 건강한 환경에서 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스포츠가 지닌 공정·정의·배려의 힘을 체득할 수 있도록 품어 지켜줘야 한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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