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젊더라도 사서 고생하지 말자

권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05 17:23

수정 2019.12.05 17:23

[기자수첩] 젊더라도 사서 고생하지 말자
"걔는 뭐하고 산대? 공무원 준비하지 않았나?" 대학 동기들과 모처럼 만난 자리였다. 잊고 있던 다른 동기들의 안부가 그날 자리의 주요 안줏거리 중 하나였다. "몇 년 했지. 지금은 푸드트럭 창업했다고 들었는데 장사는 꽤 되나 봐. 공황장애 약도 먹으면서 공부했는데 잘됐지 뭐." 화제는 곧장 또 다른 동기의 안부로 넘어갔다. "잘됐지 뭐"라는 말이 목에 걸려 젓가락을 내려놓은 건 나뿐이었다.

'2018년 일자리행정통계'를 보면서 그날의 씁쓸한 목넘김이 다시금 떠올랐다.

지난해 비임금근로 일자리는 1년 전보다 12만개 증가했다고 한다.
비임금근로자는 자영업자나 무급가족종사자 등을 말한다. 같은 기간 임금근로 일자리는 14만개 증가했다. 임금근로 일자리 수(1920만개)는 비임금근로 일자리(422만개)의 4.5배다. 하지만 증가분은 1만개 차이로 비슷하다.

한파보다 무섭다는 자영업황 속에서 20대의 비임금근로 일자리는 1만개 늘었다. 전에 읽은, 은퇴자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외식창업시장에 20~30대의 발걸음이 크게 늘었다는 기사가 스쳐지나갔다. 20대를 제외하고 비임금근로 일자리가 늘어난 연령대는 은퇴세대인 50대(3만개)와 60대 이상(9만개)이다. 통계청의 '2018년 기준 전국사업체조사 잠정결과'에서도 20대의 창업 증가세는 감지할 수 있다. 신규사업체 대표자 중 60대(6.4%)를 제외하면 20대(2.2%)의 증가세가 가장 가파르다.

이들 20대 중에는 창업시장에 자발적이면서도 비자발적으로 내몰린 경우도 꽤 있을 게다. 취업시장에서 그렇게 높지도 않은 눈높이에 못 미치는 결과만을 한참 동안 받아들다 어느새 적정 취업연령도 넘기고, 집 안팎에서 점점 커지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동기 모임은커녕 연락도 제대로 못하다가 창업시장으로 들어가게 된 청년들도 있을 게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한계상황에 내몰린 청년을 다시 한번 일어나게 하는 마법 같은 속담이다. 고생하면 그만큼의 과실을 딸 수 있다는 게 보장된다면 누구나 나서서 고생하게 돼있다.
그러나 고생 끝에 또 다른 고생으로 내몰린다면 아무리 젊어도 감당하기 어렵다.

ktop@fnnews.com 권승현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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