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여의도에서] 진짜 '정치'를 보고 싶다

김호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05 17:23

수정 2019.12.05 17:23

[여의도에서] 진짜 '정치'를 보고 싶다
2015년 12월 2일 오후 늦은 시간 국회 로텐더홀. 하루 종일 숨가쁘게 돌아갔던 국회의 모습은 일순간에 자취를 감추고 안도의 한숨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처럼 치열하게 대립하던 당시 여야 원내지도부들이 벌게진 얼굴을 하고 환하게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장면까지 목격됐다. 이날은 2016년도 예산안 처리 시한이었다.

당시 여야는 예산안과 주요 쟁점법안 처리를 놓고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밀고 밀리는 대립 전선을 구축했다. 전날 밤부터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당일 새벽 가까스로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법사위원장의 '숙려기간' 규정 지적, 일부 상임위원회의에서의 파열음 등이 다시 터져나왔다.

쟁점 법안은 물론이고 예산안의 기한 내 처리도 불투명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지만 '군걱정'이었다.
전날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정신에 따라 '야당 출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결정 및 당시 야당의 최종 합의가 극적으로 이뤄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진짜 '정치'가 작동한 것이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2020년도 예산안과 주요 법안을 처리해야 하는 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진행 중이지만 정치권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정치가 '작동'하기는커녕 사실상 '실종'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야의 극한 대립만 있을 뿐 정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당장 올해도 예산안의 기한 내 처리가 무산됐다. 2015년을 끝으로 4년 연속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한 관계자는 지난 2일 "감액심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증액심사는 시작도 못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사실상 심의가 절반밖에는 이뤄지지 않은 셈으로 '졸속 심사'라는 꼬리표도 면하기 힘들어졌다.

입법기관인 국회의 기본 책무인 법안 처리실적에서도 '정치 실종'의 단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4일 기준으로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총 1만6500여건에 달한다. 반면 처리된 법안은 7000여건에 불과하다. 단순히 산술적 처리실적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30%에 불과한 역대 최저 수준의 처리율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특히 정치권의 정쟁에 발목을 잡히면서 일명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하준이법(주차장법 개정안)' 등 어린이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비쟁점 법안은 물론이고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법안 입법까지 차일피일 미뤄진 데 대해서는 질타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 실종'은 곧 국민의 '정치 불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최근 논란이 됐던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대해 국민의 여론이 싸늘하기만 했던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달 KBS '일요진단 라이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보도한 여론조사(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9명 대상 실시한 웹조사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조사요청 대비 16.2%, 조사참여 대비 91.7%)를 보면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 의견이 76%에 달했다. 찬성은 13%에 불과했다. 총예산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의원수를 확대하는 방안을 두고도 65%가 반대 의견을, 찬성은 25%에 그쳤다. 세금 지출이 늘지 않더라도 국회의원 수 확대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것으로, 정치인들로서는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흔히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이유는 물론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다.
'진짜' 정치가 보고 싶다.

fnkhy@fnnews.com 김호연 정치부 차장

fnSurvey